항목 ID | GC00301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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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原京 |
영어음역 | Dongwongy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덕원 |
[정의]
고려 초기 지금의 강릉(江陵) 지역을 일컫던 지명.
[변천]
강릉은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세력권에 포함되어 313년(미천왕 14)에 하서량[河西良·阿慧羅]라고 하였다. 이후 신라에 포함되어 512년(지증왕 13)에는 하슬라주(何瑟羅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가 군주(軍主)로 파견되어 우산국(于山國)[지금의 울릉도]을 복속하였다. 639년(선덕여왕 8)에는 하슬라주로 북소경(北小京)을 설치하고 사찬(沙湌) 진주(眞珠)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또 658년(태종무열왕 5)에는 하슬라 지역이 말갈(靺鞨)과 맞닿아 있어서 백성이 편안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소경을 폐지하여 주(州)를 설치하고 도독을 두어 지키게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신라 9주(九州) 중하 하나인 하서주(河西州)를 설치하였으며, 757년(경덕왕 16)에 하서주를 명주(溟州)로 개칭하고, 9군(郡) 25현(縣)을 관할하였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인 936년(태조 19)에는 동원경으로 개칭하고 임영관(臨瀛館)을 건립하였으나 940년에 다시 명주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동원경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인 936년에 설치된 이후 940년에 명주로 개칭될 때까지 약 5년 동안 강릉의 지명으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