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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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世行 |
영어음역 | Kim Sehaeng |
이칭/별칭 | 건보(健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호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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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김홍적(金弘績) |
아내 | 강릉최씨(江陵崔氏) |
성별 | 남 |
생년 | 1620년(광해군 12) |
몰년 | 미상 |
본관 | 강릉 |
대표관직 | 경릉참봉(敬陵參奉)|정언(正言)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자는 건보(健甫). 김준현(金峻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호변(金虎變)이고 아버지는 김홍적(金弘績)이다.
[생애]
1658년(효종 9) 경릉참봉이 되고, 166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김천찰방·감찰·예조좌랑·병조좌랑·병조정랑을 거쳐 1666년(현종 7)에는 홍천현감을 지냈다. 경직(京職)에 돌아와서는 1667년 정언을, 1670년 지평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이후 경성판관(鏡城判官)·거창현감을 거쳐 대동찰방(大同察訪)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못하고 죽었다.
[활동사항]
홍천에 있을 때 어사(御使) 이익(李翊)이 그의 청렴함을 조정에 알려 나라에서 옷감을 내려 주었다. 서울에서의 관직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에는 말 한 필을 타고 혼자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병사(兵使) 윤천뢰(尹天賚)가 안쓰러워하며 노자를 마련해 주었다. 감사(監司) 남구만(南九萬)도 그의 여장을 보태 주었다고 한다.
김세행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상국(相國) 여경제(呂聖濟)와 조상우(趙相愚)가 청백리에 천거하였다. 벼슬살이를 한 고을마다 김세행을 사모하는 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