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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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강릉에 살던 강릉 김씨가 서울을 구경하고 쓴 기행문. 「서유록(西遊錄)」의 저자인 강릉 김씨(江陵金氏)[1862~1941]는 1862년(철종 13) 강릉에서 태어나 인근 장현 마을[현 강원도 강릉시 강남동] 강릉 최씨(江陵崔氏)에게 시집가서 7남매를 낳고 살았다. 나이 52세 되던 1913년에 서울을 다녀오면서 37일의 여정을 한글로 기록한 여행기를 썼다. 강릉에서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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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방 기독교인들이 만든 합창단. 강릉기독합창단은 2000년 5월 강릉에 거주하는 40여 명의 단원으로 구성하였고,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함을 목적으로 국내∙외 음악선교는 물론, 합창 문화 발전과 각종활동[교회순회, 위문, 초청공연 등]을 하고 있으며 회비와 헌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2001년 5월 14일 강릉문화예술관 대공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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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도로, 철도, 해상로, 항공로 등을 이용하여 사람과 화물을 이동시키는 수단. 강릉의 교통 수단은 도로와 철로를 이용하는 육상 교통, 해상로를 이용하는 해상 교통, 항공로를 이용하는 항공 교통 등이 있다. 강릉에 자동차가 처음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17년 강릉~경기도 이천 사이에 도로가 생긴 그 이듬해인 1918년부터이고, 열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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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여러 지역을 서로 이어 사람, 마차, 수레, 자동차 등을 이동시키기 위해 육상에 만든 길. 도로는 생산, 유통, 교류 등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한다. 강릉의 도로를 보면, 신라 때는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는 서라벌로, 북쪽으로는 함경도 지역으로 다녔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서쪽에 있는 대관령을 넘어 송도, 한양으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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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리에 있는 여학생 교육원. 사임당의 얼과 덕성을 이어 받아 전통 문화를 계승 발전하고 심신 수련을 통한 민주 시민을 기르는 것이 목적이다. 강릉 지방의 대표적 유적지인 오죽헌의 정비 사업 준공식에 참석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강원도 교육감, 강원도지사, 강릉시 유지 등이 모인 자리에서 강릉 지역에 사임당의 얼을 계승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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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무대에서 연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종합 예술. 강릉 지역에서의 연극 활동은 1970년대부터 나타났다. 1970년 초에 연극 활동은 연 1회 정도의 부정기적인 공연으로 이루어졌는데, 당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강릉 출신의 대학생 연합 서클 ‘근우회’의 공연이 그것이었다. 1972년 6월 관동 대학교에 근무하던 희곡 작가 김정개의 지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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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 속에서 자연과 인간과 역사의 관련성을 토대로 인간이 만든 문물 등에 관련된 일 등을 설명하는 분야. 인문지리학의 연구 분야는 여러 기초과학[인문과학, 사회과학]의 다른 많은 학문 분야와 밀접히 관계되어 있다. 인문 현상 중에서 무엇을 그 연구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경제지리학, 교통지리학, 관광지리학, 도시지리학, 문화지리학, 사회지리학, 역사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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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주권자가 그 영토 및 국민을 통치하는 행위, 즉 국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 정치에 대한 개념은 시대와 장소, 학자들에 따라 다양하게 제시된다. 20세기 전반까지 정치에 대한 개념은 주로 국가나 사회 집단과 관련하여 규정되었다. 즉, ‘국가의 작용이나 활동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치로 보는 국가 현상설과 ‘사회 집단 일반의 현상’이라고 보는 집단 현상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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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명태의 창자 부위를 염장하여 발효시킨 젓갈. 명태는 버릴 것이 없는 수산물로 아가미로는 아가미젓을, 창자는 창자젓을, 알로는 명란젓을 담근다. 창난젓을 담글 때 동태 창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생태 창자만으로 담그는 것이 질이 좋은 젓갈이 된다. 창난젓은 동해안의 강원도 일대가 주요 생산지이며, 인천, 경기도 등 서해안과 남해안에서도 소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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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직후 발생한 강릉 지역에서의 좌, 우익 간의 이념 갈등. -사상이 낳은 정치적 혼란- 해방 직후 강릉 지역 좌우익의 갈등-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왔으나 강릉 지역의 일본군은 계속 무장한 채로 주둔하고 있었다. 2주일이 지나도록 미군은 오지 않았고, 하루 바삐 일본군을 몰아내려는 의지가 강했던 시민들은 38선 이북 양양에 이미 주둔해 있던 소련군에게 일본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