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8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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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宗敎 |
영어공식명칭 | New Religion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경석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개설]
신종교란 기존의 유교, 불교, 도교와 기독교 외에 1900년대를 전후하여 새로 성립된 종교를 일컫는다. 완주군의 신종교로는 남학, 무량교, 영주교, 천도교, 증산교, 원불교, 통일교, 여호와증인 등을 들 수 있다.
[남학]
남학은 1862년(철종 13)경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에서 이운규(李雲圭)가 창시한 종교이다. 이운규는 유교 경전은 물론 도가서(道家書) 등 제자백가(諸子百家)를 탐독하고 의복(醫卜)·술수(術數)까지 연구하였다. 특히 천지의 운도와 인세(人世)의 역사적 쇠왕과 교운(敎運)을 살피기 위한 역학 연구에 몰두하다가 마침내 선후천 운도가 바뀌는 교역(交易)의 이(理)를 깨닫고, 이에 따라 선천 역리를 밝힌 『주역』의 원리가 후천 역리로 바뀐 『정역(正易)』의 이치를 밝혔다. 이운규 계열은 크게 두 계열로 나누어졌는데, 그 하나가 아들 이용래와 광화(光華) 김치인(金致寅)으로 이어졌고, 다른 하나는 『정역』을 저술한 일부(一夫) 김항 계열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함께 그 자취를 찾기 어렵고, 근래에는 거의 활동하지 않는다.
[무량교]
무량교는 1920년 손치성(孫致成)이 창시한 종교이다. 손치성은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에서 태어나 가사에 종사하였으나 많은 병고에 시달리다가 29세 때 돌연 인생고를 한탄하고 천등산(天登山) 고깔봉에 올라가 막을 치고 기도생활을 시작하였다. 34세 되던 1920년 하늘로부터 “무량(無量)으로 위종(爲宗)하고 포덕천하 광제창생하라”는 무량대도명(無量大道命)을 받고 무문도통(無文道通)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손치성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고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주자 자연 종단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1963년 손치성이 사망하고 손치성의 친아들 손영방(孫榮邦)이 뒤를 이어 본부를 전라북도 익산시 남중동으로 이전하기도 하였다. 손영방이 1994년에 사망하자 다시 창설지인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로 옮겼다. 주요 활동으로는 1993년에 무량대도일월성지비와 탑을 만들어 세웠다. 교세를 보면 교조 당대에는 수천 명의 신도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전라북도, 경상북도, 충청남도 등지에 10여 개 지방조직과 300여 명 신도를 갖고 있는 영세한 수준이다. 전라북도 완주군의 신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영주교]
영주교는 1937년 임구천(林九天)이 창시한 종교이다. 임구천은 본명이 임춘생(林春生)이며, ‘구천’ 또는 ‘영당(靈堂)’은 도호(道號)이다. 임구천은 당시 동학이나 증산교인들이 주송공부를 하면 오래도록 글을 배우지 않더라도 쉽게 도통한다는 말을 듣고 20세부터 입산수도하였다. 수년의 수도 끝에 세상대도의 근본인 영명(靈命)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수도를 계속하여 하늘로부터 “인간을 주재하여 천도하라”는 계시를 받아 포교를 시작하였다. 1937년 3월 15일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쌍계사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교명을 ‘영주교’라 하였다. 그 후 해방 전까지 비밀리에 포교활동을 하였다. 1970년 10월 지금 중앙본부가 있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전라북도 완주군에서는 영주교의 자취를 찾기 어렵다.
[천도교]
천도교는 최제우의 동학(東學) 사상을 바탕으로 발전시킨 종교이다. 동학농민운동이 외세에 의해 진압된 뒤, 제2대 교주인 최시형(崔時亨)이 처형되자 도통은 손병희(孫秉熙)에게 전수되었다. 손병희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걸고 1905년 교명을 ‘천도교’로 개칭, 새로운 교리와 체제를 확립하였다. 전라북도 완주군의 천도교 신자들은 나이가 연로하여 대부분 사망하고 신자 수는 거의 극소수이다.
[증산교]
증산교는 강일순(姜一淳)[1871~1909]을 교주로 하는 종교이다. ‘증산’은 강일순의 호이다. 강일순은 모악산 대원사에서 대각을 이루고 탐·음·진·치(貪淫嗔痴) 4종마(種魔)를 물리치고, 신화통영(神化通靈), 천지운도(天地運度)의 지혜와 후천선계를 개벽할 상제(上帝)의 권능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강일순의 사후 강일순을 따르던 제자들은 태을교, 미륵불교, 선도교, 보화교, 무극도 등 다양하게 분파하였다, 현재는 50여 개 교단이 난립하고 있고 주요 교단으로는 증산교본부·태극도·대순진리회·증산진법회·증산도 등이 있다. 전국적으로 100여 만 명의 교인이 있고, 모악산을 중심으로 증산교본부를 비롯해 영대, 삼청전 등이 있다. 통계청 조사[2015]에 의하면 전라북도 완주군의 증산계열 신도 수는 대략 100여 명 정도이다.
[원불교]
원불교는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이 창시한 종파이다. 1916년 박중빈은 자신의 고향인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대각(大覺)하고 1924년 6월 1일 전라북도 익산역 근교 보광사에서 원불교의 전신인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불법연구회는 사람이 사는 마을에 회관을 두며, 법당에는 종래 불교처럼 등상 불을 봉안하지 않고 우리 마음의 상징인 법신불 일원상[○]을 모신다. 또 부처를 특정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고 삼라만상 일체를 부처로 보고 불공은 그 일에 따라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2대 종법사 정산종사는 광복 후 불법연구회를 임시 회명이라 규정하며 교명을 ‘원불교’라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라북도 완주군에는 선교기관으로 삼례교당, 구이교당, 전주혁신교당[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수계교당, 봉동교당 등이 있다. 통계청 조사[2015]년에 의하면 신자는 600여 명 정도이고, 지역 교화를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통일교]
통일교는 문선명(文鮮明)이 1954년 서울특별시에서 창시한 신흥 그리스도교회이다.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에서 출생한 문선명은 1952년 부산시 범일동(凡一洞)에서 교회를 시작하여 1953년에는 대구를 거쳐 1954년 서울로 올라와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약칭 통일교]를 창설하였다. 선교 활동은 국내에만 국한하지 않고 세계 각국을 향하여 전개되었다. 1959년 일본, 1960년 미국, 1964년 독일, 1966년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에도 교회를 설립하였다. 1972년 이후에는 세계선교본부를 미국에 두고 전 세계를 향한 폭넓은 선교 활동을 벌였다. 통일교의 현 교세는 한국에 약 600개 교회와 50여만 명의 신도가 있다. 세계적으로는 한국 신자를 포함하여 약 400만 명의 신도가 있다. 전라북도 완주군에는 선교기관으로 세계평화통일 가정연합 소양가정교회, 송광사랑의교회, 통일교회 등이 있다. 통계청 조사[2015]에 의하면 신도 수는 100여 명 내외이다.
[여호와증인]
여호와증인은 1872년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알레게니(Allegheny)에서 러셀(Russel, C. T.)을 중심으로 창립된 기독교계 신종교이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바탕으로 하여 대체적으로 근본주의 신앙을 지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912년 홀리스트 선교사가 내한하여 문서 전도를 시작하면서 활동이 전개되었다. 1952년 사단법인 워치타워책자협회를 설립하고 가정 전도 방식으로 『파수대』, 『깨어라!』 등 책자를 보급하였다. 전라북도 완주군에는 선교기관으로 여호와증인왕국회관, 여호와증인 봉동왕국회관, 여호와증인 삼례왕국회관 등이 있다. 통계청 조사[2015]에 의하면 신도 수는 100여 명 내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