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8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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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主敎 |
영어공식명칭 | Catholicism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진성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의 로마 교황을 교회의 대표자로 인정하는 종교.
[개설]
천주교는 공식 명칭으로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 또는 로마가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이다.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서학(西學)·서교(西敎)·천주학(天主學)·천주공교(天主公敎) 등으로 불리다가 천주교로 정착되었다.
[고산지역의 신앙공동체 형성 과정]
현재의 고산본당이 설립된 것은 1958년이지만, 그 기원은 되재성당이다. ‘고산’이라는 이름으로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1791년(정조 15) 이후였다. 한국 주교회가 시작된 이후 초창기 신자들은 현재 고산본당 관할인 고산·비봉·경천·화산·동상·운주면에 사는 신자들을 ‘고산 교우’라고 불렀다. 전라도의 북쪽인 고산 지역은 다른 곳에서 신자들이 이주해오는 관문으로서 역할을 한다. 고산 지역으로 이주하던 초창기 신자들은 대부분 진산[당시 전라도]과 충청도 신자들로 목숨을 보전하고 신앙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고산 지역의 심산유곡으로 숨어들었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이후부터는 전국에서 신자들이 전라도를 피신처로 삼아 모여들면서 먼저 찾은 곳이 고산 지역이었으며, 1866년(고종 3) 병인박해 이후로는 전국에서 이주해온 교우들이 절정을 이루었다.
[완주군의 천주교회]
1) 고산성당[천주교 전주교구 고산교회]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 지역은 전라도 선교사들이 처음 정착한 곳이다. 1877년(고종 14) 조선교구 부교구장인 마리 블랑(Marie Jean Gustave Blanc)[한국명 백규삼(白圭三)] 주교가 고산 지방 으럼골을 선교 거점으로 정하면서 10년 동안 어름골과 다리실에 거처를 두고 복음을 전파했다. 1888년(고종 25) 아르노 라푸르카드(Arnaud Lafourcade) 신부가 거처를 고산 빼재로 옮겼다. 뒤를 이어 조제프 베르모렐[한국명 장약슬, Joseph Vermorel] 신부가 전교했다. 1891년(고종 28) 우도 신부가 고산 지방 차돌박이에 부임해 고산본당을 세웠다. 1893년 비에모 신부가 부임해 차돌박이에 성당을 지으려다 마땅한 장소가 없자 되재에 성당을 지었다. 고산성당은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에 위치해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경천면·동상면·비봉면·운주면·화산면 전역을 관할하고 있다. 1954년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에 성당 건축을 위한 땅을 매입해 1958년 고산성당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봉동천주교회
고산성당의 관할 공소인 봉동공소는 1989년 12월에 성당 건축을 시작해 1990년 1월에 준공하였다. 지금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일대에 완주산업단지가 입주하면서 인구가 증가하자 1995년에 봉동본당으로 승격했다. 관할 지역은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전체와 장구리공소, 고산면 화정리·양지리·신풍·신죽림·산정·신기 지역, 용진읍 신강리·지암리·덕암리를 포함한다. 본당 승격 1년만인 1996년에 새 성당을 신축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3) 소양천주교회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일대는 1850년대부터 신앙 공동체가 자리한 오도재·성지동·신리골 등이 있었다. 성지동에 살던 이명서·조화서·정원지·조윤호 성인과 신리골에 살던 정문호·손선지·한재권 성인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성지동과 신리골에서 잡혀 전주로 압송되어 순교했다. 성지동은 박해 이후에도 교우촌으로 유지되었으나, 지금은 신자들이 거주하지 않는다. 1884년에 정낙재[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와 대성리에 공소가 설립되었다. 이후에 목가정이[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오도재[전라북도 완주군 오도치], 삼거리[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 신안리[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왕정리[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등에 공소가 설립되었다. 현 소양성당은 1995년 1월에 준공했으며, 1995년 2월에 인후동성당에서 분리하여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소양본당은 완주군 소양면의 황운리·신교리·대흥리·해월리·다리리·신원리 등을 관할하고 있다.
4) 상관천주교회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지역에 대한 기록으로는 1894년 5월 31일 동학농민군이 전주를 점령했을 때 전주본당 보두네 신부가 마재공소로 피신했고, 뮈텔 주교[당시 조선교구장]가 전라도를 순시하던 중인 1896년 12월 초에 전주에서 진안[전라북도 진안군]으로 순시를 하러 가는데 눈이 너무 많이 내려 마재공소에 들러 쉬어갔다. 1880년에 어두리공소와 대판이공소, 1883년에 마재공소가 설립되었고, 1910년에 서당리공소가 설립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전동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1952년 상관공소가 설립되었다가, 1959년에 현재 상관성당이 신축되었으며, 1976년에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는 1936년 3월에 당시 김양홍 교구장이 현재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 후동의 초가집을 인수해 함석집으로 개수해 공소를 설립했고, 전동성당 관할 공소로 출발했다. 그런데 1950년 한국전쟁으로 삼례에 성당을 세워 고산 지역까지 관리하려고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 261번지에 있던 5칸 건물을 구입해서 시작했다. 1951년 5월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관할 구역은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전라북도 익산군 춘포면 쌍정리·문종리,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구덕리·동촌리·광암리·장구리, 전라북도 완주군 조촌면 화전리·내동리, 전라북도 완주군 초포면 미산리·전당리,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용흥리·운곡리 등이었다. 1955년 8월에 새 성당이 준공되었으며, 1977년 10월에 나환자 정착촌인 익산공소를 설립했다. 1981년 금마성당이 신설됨에 따라 본당 관할이었던 장구리공소·광암리공소·등촌리공소를 금마본당으로 이관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인접한 봉동 지역에 완주산업단지가 자리 잡으면서 삼례 지역의 인구가 증가하자, 1992년 2월에 상삼례성당을 신설했다. 상삼례성당이 분리 신설되면서 익산공소는 상삼례본당으로 이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