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4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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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최범호 |
[정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개설]
청동기 시대는 신석기 시대에 이어 나타나며,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철제 도구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를 말한다. 진안 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남긴 주거지와 고인돌 등이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진안 지역의 청동기 시대 유적]
진안 지역의 청동기 시대 유적은 크게 생활 유적과 분묘 유적으로 구별할 수 있다. 청동기 시대의 분묘 유적은 이른 시기에 고인돌이 축조되기 시작하여 이어서 돌널무덤·독무덤 등이 발생했다고 추정된다. 이 시기 대표적인 분묘 유적은 고인돌인데 정천면의 모정리 진그늘 유적·모정리 모곡 유적·모정리 여의곡 유적과 안천면의 삼락리 승금 유적·삼락리 안자동 유적·삼락리 수좌동 유적 및 상전면의 월포리 고인돌 떼 등에서 확인되었다.
생활 유적으로는 주거지·밭·원형 및 장방형 구덩이 유구 등이 있는데 주거지 유적은 정천면의 갈용리 농산 유적·모정리 여의곡 유적과 안천면의 삼락리 수좌동 유적에서 조사되었다. 특히 모정리 여의곡 유적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고인돌의 덮개돌을 옮기는 이동로로 추정되는 200m에 이르는 길이 발굴되었다. 덮개돌의 이동로를 통해 석재의 이동 방법과 방향 및 채석장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150~200㎝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열을 지은 길이 3~4m에 깊이 10㎝ 내외의 흔적들이 중첩되어 있다. 당시 사람들은 직경 10㎝ 내외의 통나무를 3~4m 길이로 잘라서 바닥에 레일처럼 깔고 그 위에 통나무를 가로질러 배치한 후, 얹힌 덮개돌을 끌면서 운반했다고 추정된다.
[갈용리 농산 유적]
갈용리 농산 유적에서는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및 근세 유구가 조사되었다. 이중에서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는 주거지 유구 6곳과 원형·장방형 구덩이 유구 70여 구 등이 조사되었다.
[모정리 여의곡 유적]
모정리 여의곡 유적은 모두 4지구로 나누어 조사되었다. A 지구는 넓은 충적지의 가장자리로서 고인돌 떼가 조성되어 있고, 고인돌의 덮개돌을 옮기기 위한 시설로 추정되는 길이 연결되어 있다. 또한 그 옆에 농경이 이루어진 흔적이 확인되었다. B 지구는 C 지구 북편 야산의 북쪽 사면으로서, 평지와 능선이 만나는 부분에서 청동기 시대 주거지·고인돌·돌무지 유구 등이 조사되었다. C 지구는 D 지구 북편의 야트막한 언덕으로 능선을 따라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가 조영되었다. D 지구는 A 지구 서편에 위치한 동서 방향의 야산으로, 그 남쪽 사면에서 청동기 시대의 돌널무덤과 백제의 돌방무덤·고려의 덧널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용담댐 수몰 지구에서 조사된 유적 중 모정리 여의곡 유적에서 가장 많은 수의 고인돌이 발견되었고, 고인돌과 함께 주거지·밭·길 등이 함께 발견되어 청동기 시대 취락의 전모를 밝힐 수 있었다.
[모정리 망덕 유적]
모정리 망덕 유적은 모곡 유적에서 모정리 여의곡 유적에 이르는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모정리 망덕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18기와 돌널무덤 5기 등이 군락을 이룬 형태로 확인되었다. 모정리 망덕 유적은 인근의 모정리 여의곡 유적과 더불어 금강 상류 지역에 생활 및 무덤 유적을 가진 독자적인 청동기 문화 집단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