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670
한자 金益重
영어공식명칭 Kim Ikjung
이칭/별칭 상삼(尙三),용암(龍庵)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78년연표보기 - 김익중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21년 - 김익중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28년 - 김익중 양무원종공신 녹훈
몰년 시기/일시 1740년연표보기 - 김익중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61년 - 김익중 병조참의 추증
출생지 양정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지도보기
부임|활동지 진위 -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묘소|단소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일선
대표 관직 선전관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개설]

김익중(金益重)[1678~1740]은 1721년(경종 1) 무과에 급제했으며, 양무원종공신(揚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가계]

김익중의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상삼(尙三), 호는 용암(龍庵)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김귀지(金貴祉)로 수원에서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로 이거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김복룡(金福龍),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효남(金孝南), 아버지는 증(贈) 공조참판(工曹參判) 김천길(金天吉),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이며, 부인은 박오환(朴五桓)의 딸 영해박씨(寧海朴氏)이다.

[활동 사항]

김익중은 1721년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723년 수문장 겸 선전관으로 미조항진(彌助項津), 우수영진(右水營津) 등에 나아가 선정을 베풀었다. 이때 백성들이 송덕비(頌德碑)를 세웠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의금부가도사(義禁府假都事)로서 밀지를 받고, 진위(振威)[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의 적을 무찌르고자 단기(單騎)로 나아갔다. 진위의 적도(賊盜) 이문저(李文著)는 그 진세가 굳세고 거침없는 것이 마치 부엉이가 날개를 활짝 편 것 같아서 모두가 흰옷을 입은 적도들 속에 붉은 관복을 입고 쳐들어간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장이 김익중을 붙들고 “적이 붉은 관복을 보면 반드시 먼저 해칠 것이니 흰옷으로 바꾸어 입고 가심이 어떠하리까?” 하니, 김익중은 성내어 말하기를 “나라의 관복에 어느 놈이 감히 손을 댄단 말이냐” 하고 적굴에 뛰어들어 분투하다가 드디어 적괴 이문저(李文著)를 포박하였다.

국왕은 김익중의 노고를 치하하고 “이문저를 죽이지 않고 사로잡았음은 실로 김도사의 용맹이다” 하고 양무원종공신 일등에 녹훈하였다. 또한, 3대 추증과 자손들에게 음보(蔭補)를 내렸다. 이후 퇴관하여 낙향한 후 용암정(龍巖亭)을 짓고 평생을 지냈다.

[학문과 저술]

1909년 김익중의 행적을 엮은 『용암실록(龍庵實錄)』이 간행되었다.

[묘소]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1761년(영조 37) 통정대부(通政大夫)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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