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계면 산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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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친족, 혈연, 지연, 학연, 촌락, 동문수학, 나이(동갑) 등을 매개로 결성되는 결사체. -‘계(契)’를 아십니까 - 강릉 지역의 전통적인 계문화 계라고 하면 ‘아줌마들’이 식당에서 벌이는 회식 자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계모임, 계가 깨졌다, 패가망신… 이런 말부터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목돈을 모으는 위험하고 원시적인 방식이 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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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 구화골에 있었던 마을. 귀약골[求花洞]은 옛날 이 마을에 사는 효자가 부모의 병구완을 위해 골짜기 안에 들어가서 약초를 구해 부모의 병을 구완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효자는 여러 곳을 다니면서 약을 구했으나, 제대로 약을 구하지 못해 낙담하고 있다가 우연히 귀약골 안에서 약초를 구했다고 한다. 귀약골 계곡 안에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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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월 27일 만덕봉에서 벌어진 공비토벌전투. 1952년 1월 24일 대궁산 전투에서 2명이 생포되고, 남쪽으로 도주한 잔당들을 강원전경 제8대대 1중대와 강릉경찰서 병력이 합동으로 만덕봉에서 공비 2명을 추가로 사살하였다. 한국전쟁은 1951년 중반에 접어들어 38선에서 방어에 주력하는 장기전 태세로 넘어갔으며, 7월부터는 휴전회담도 시작되었다. 이에 노동당은 남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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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발생하는 산불의 원인과 현황 및 예방 활동. 강릉시는 전체 면적의 80%가 산림으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국유림이 43%, 사유림이 32%, 공유림이 4%를 차지하고 있다. 강원도 산림이 가진 산소 공급, 목재 생산, 홍수 조절, 갈수 완화, 수질 정화, 휴양 및 공익 기능 등의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5조 원 정도로 평가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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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3리에 있는 마을. 영밑골[嶺底洞]은 골이 백두대간을 지나가는 산계령 밑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영밑골은 산계령에서 내려온 계곡에 있는데, 산계령은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석병산과 자병산 사이에 있는 큰 재이다. 영밑골 안에는 산계령이 있다. 산계령은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와 산계리 사이를 잇는 고개로, 영밑골 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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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남양2리와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 사이에 있는 산. 석병산에서 내려온 산으로 산이 온통 돌에 둘러싸여 있다. 산의 이름은 돌의 색깔이 불그레하여 주위가 늘 붉게 보이는 데서 생겨났다. 자병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산 사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반대편의 서쪽 사면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경사를 보이고 있다. 자병산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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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3리에 있는 마을. 하황지미는 계곡인데, 예전에 봉황들이 날아오는 연못이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연못 이름이 마을 이름으로 되었다. 황지미는 깊은 계곡이어서 상황지미와 하황지미로 나누었는데 상황지미는 선목이 밑이 되고, 하황지미는 계곡 입구가 된다. 황지미 계곡은 만덕봉과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석병산에서 내려온 산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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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 3리에 있는 마을. ‘학림동’이라는 명칭은 예부터 이 지역에 수백 년 묵은 나무들이 숲을 이뤄 학들이 많이 모여들어 생긴 마을 이름이다. 또한 학림동 길 옆 숲속에 서낭당이 있어 서낭뎅이라고도 한다. 학림동은 선목이에서 내려온 황지미골, 석병산에서 내려온 절골, 산계령에서 내려온 영밑골이 합쳐진 곳에 있다. 학림동에서 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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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직후 발생한 강릉 지역에서의 좌, 우익 간의 이념 갈등. -사상이 낳은 정치적 혼란- 해방 직후 강릉 지역 좌우익의 갈등-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왔으나 강릉 지역의 일본군은 계속 무장한 채로 주둔하고 있었다. 2주일이 지나도록 미군은 오지 않았고, 하루 바삐 일본군을 몰아내려는 의지가 강했던 시민들은 38선 이북 양양에 이미 주둔해 있던 소련군에게 일본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