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명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151
한자 -明堂
영어공식명칭 Beolmyeongda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은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벌명당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지도보기
성격 명당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명당 터.

[명칭 유래]

벌명당동작구 사당동 동래 정씨 문중 묘가 있는 지역이다. 벌명당은 뒷산의 우뚝 솟은 봉우리가 벌통 위를 덮는 뚜껑 모양이면서 주변 형세가 꽃의 이미지를 띤 것에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벌명당은 이곳에 묏자리를 쓰면 벌떼처럼 자손이 번창하고 재물과 명예가 쌓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묏자리를 정할 때는 지관(地官)을 통해 전국의 땅을 살피고 명당을 찾도록 하였는데 이때 지관이 찾은 명당이 지금의 벌명당이다. 지관은 이곳을 명당으로 알고 임금에게 고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정씨 성을 가진 영의정이 이곳이 명당임을 알고 다른 곳을 찾도록 부탁하였고, 이에 지관은 다시 다른 명당을 찾으러 갔다.

당시 지관은 영의정에게 자기가 동재기나루를 다 건널 무렵 그곳을 파보라고 하였고 영의정은 지관이 시킨 대로 그 땅을 파보니 큰 벌들이 수없이 나왔다고 한다. 이 벌들이 지관에게 날아가 지관을 쏘려 하자 이를 피하려고 지관이 독을 뒤집어썼는데, 벌들이 지관이 뒤집어쓴 독에다가 침을 놓자 독이 깨졌고 벌들은 죽었다고 한다. 이후 정씨 성을 가진 영의정은 그 자리에 묘를 썼다고 하며 그 가문에 9대째 정승이 나왔다고 한다.

[자연환경]

벌명당의 서쪽으로는 100m 이하의 낮은 구릉지와 수목으로 이루어진 까치산근린공원이 있다. 남쪽으로는 100m 남짓의 낮은 산지가 길게 뻗어있는데, 현재는 둘레길이 완성이 되어 관악산까지 연결되어 있다.

[현황]

벌명당에는 조선 시대 임당(林塘) 정유길(鄭惟吉)[1515~1588], 수죽(水竹) 정창연(鄭昌衍)[1552~1636], 제곡(濟谷) 정광성(鄭廣成)[1576~1654] 등 동래 정씨 임당공파 묘역 및 신도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1호]가 있다. 지하철 7호선 남성역 2번 출구에서 가까워 도보로 갈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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