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0003
한자 -山- 固有- 地名
영어공식명칭 Apsan is our unique place name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권

[정의]

대구광역시에 있는 앞산 지명의 고유성.

[고문헌을 토대로 본 성불산의 변천과정과 앞산과의 관계]

1768년 발간된 『대구읍지(大丘邑誌)』 ‘산천(山川)’ 편에 의하면 앞산의 지명이 ‘성불산(成佛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불산이 가장 먼저 나오는 고문헌은 1530년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다, 그 후로 『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년 발간], 『대구읍지』[1768년 발간], 『대동지지(大東地志)』[1861~1866년 발간],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1903~1908년 발간], 『교남지(嶠南誌)』[1904년 발간]등에도 나타난다. 『대구읍지』 기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불산은 부의 남쪽 10리에 위치하며, 관기안산(官基案山)[풍수적 용어로 관청 터 맞은편에 위치하는 산]이다. 비슬산에서 뻗어내려 온다.”

불교적 용어인 ‘성불산’은 조선시대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영향으로 생긴 대덕산(大德山)이라는 새로운 유교적 지명과 공존하게 된다. 성불산은 1530년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지만, 대덕산『대구읍지』에 비로소 나오고 있다. 그것도 자연경관을 주제로 하는 ‘산천’ 편이 아닌 일반 문장에서 나오고 있어 그때까지도 ‘대덕산’보다는 ‘성불산’이 앞산을 대표하는 지명이었다.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1751년 발간] ‘산수(山水)’편 ‘산형(山形)’ 조에는 “대구비파산내유용천지석(大丘琵琶山內有湧泉之石)”, 즉 “대구 비파산에는 물이 솟아나는 바위가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비파산(琵琶山)비슬산(琵瑟山)의 오기다. ‘비파(琵琶)’산과 ‘비슬(琵瑟)’산은 혼돈하기 쉽다. 실제로 앞산 달비골 북사면에는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언급한 석정(石井)이 존재한다. 앞산비슬산에서 뻗어내려 오기에 옛 사람은 앞산비슬산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였다. ‘비슬산’ 지명은 최치원이 저술한 『당 대천복사 고 사주 번경대덕 법장화상전(唐大薦福寺故寺主翻經大德法藏和尙傳)』에 나오는 화엄10찰에 ‘비슬산 옥천사(琵瑟山玉泉寺)’가 처음으로 나온다. 결론적으로 앞산의 옛 지명인 ‘성불산’은 시대적 이념, 오기(誤記)로 인하여 ‘대덕산’, ‘비파산’ 등으로 불리거나 기록되어 전해 왔다. 그러던 중 연귀산(連龜山)[제일중학교 교정]을 대구의 진산(鎭山)이라 함으로써, 연귀산 남쪽에 있는 성불산이 자연스레 ‘앞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주산[진산]의 남쪽을 앞이라 부른다.

[일제강점기 당시 앞산을 전산(前山)으로 한자화하면서 병기]

‘성불산’ 지명은 조선시대의 시대적 이념인 숭유억불의 영향으로 유생들이 의도적으로 무시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던 중 진산의 남쪽, 즉 앞에 있는 산으로 인식하여 민간에서 자연스레 ‘앞산’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판단 근거는 1881년 일본 ‘육지측량부’에서 발간한 지형도와 일제강점기인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2종류의 지형도이다. 1881년 지형도에는 지금의 앞산 정상부를 ‘비실산(枇實山)’으로, 1918년 지형도에서는 ‘전산(前山)[アプ サン]’으로 표기하고 있다. 정리하면, 1881년 지형도에서는 앞산 정상부만 ‘비실산’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비슬산’ 한자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발음과 의미만 전해 듣고 한자를 차용한 결과다. ‘비(枇)’와 ‘비(琵)’ 모두 비파 악기의 의미를 가지는 한자어다.

다음으로 1918년 지형도에 표기된 ‘전산(前山)’이다. 전산은 일본인들이 우리 선조들이 부르던 앞산을 단순히 한자화한 것이다. 그 이유로 ‘전산’ 지명 옆에 일본인들이 ‘가타가나’로 ‘アプ サン(아뿌산)’을 병기(倂記)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가타가나’는 외국어[외래어 포함] 표기에 사용되기 때문에 당시 우리 선조들이 ‘앞산’으로 부르던 지명을 일본인들이 한자 지명인 '전산(前山)'을 차용하면서 한자 옆에 한글 지명인 ‘앞산’을 가타가나로 병기한 것이다.

[앞산과 주위의 대덕산, 산성산 등 주변 봉우리 지명과의 관계]

산성산은 고문헌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1918년 지형도에는 ‘전산’과 ‘산성산(山城山)’만 표기되어 나타난다. 전산이 일본인 관점에서 볼 때 외국어인 ‘앞산’을 한자화한 것이어서 가타가나 문자를 활용하여 ‘아뿌산[アプ サン]’으로 했듯이 산성산 역시 가타가나인 ‘산송산[サンソンサン]’으로 표기하고 있어 앞산과 더불어 산성산 역시 우리 고유 지명으로 보면 된다.

이처럼 원래 ‘성불산’ 지명이 시대적 이념, 오기(誤記), 지역민들의 편의 등으로 인하여 ‘대덕산’, ‘비파산’, ‘앞산’ 등으로 불려 왔음을 알 수 있다. 결국 하나의 산에 여러 가지 지명이 공존하다 보니 최정상부인 앞산 외에 대덕산, 비파산 지명 등을 다른 봉우리에 갖다 붙이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앞산 일대의 지명은 앞산산성산만이 고유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명이라는 것은 현재 어떻게 불리는가도 중요하므로 지금의 대덕산, 비파산앞산과 더불어 각기 다른 봉우리에 공존해도 무방하다. 이것은 지명에 대한 지역민들의 인식 체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향후 공식적으로 사용될 앞산의 유래에 대한 의견]

지금까지 기술한 내용을 토대로 정리하면 앞산은 우리 고유의 지명으로서 현 시점에서 가장 합리적 근거를 가지는 지명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앞으로도 ‘앞산’이라는 지명을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