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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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丹巖寺 |
영어공식명칭 | Danamsa Temple |
이칭/별칭 | 다남사(多男寺),대한불교조계종단암사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소양로 15-5[죽절리 688] |
집필자 | 이경석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 소속 사찰.
[개설]
단암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단암사는 몇 가지 설화가 있다. 첫째, 이 절에는 석굴이 있는데 굴속 구멍에서 절 식구들이 먹을 만큼 쌀이 나왔다고 한다. 누군가가 욕심이 나서 더 많은 쌀이 나오게 하려고 구멍을 크게 뚫었으나 피만 나오고 다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둘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 일대를 지나갈 때 왜군 말이 무릎을 꿇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를 이상히 여긴 왜장이 굴에 들어가 보니, 굴 안에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고 미륵불이 현신해 있었다. 왜군이 이곳에 머무르며 하루 동안 기도를 드리자 비로소 군마들이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셋째, 단암사에서 힘겨운 생활 속에도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는 스님에게 어느 날 백발노인이 나타나 전답을 마련하라는 돈을 주어, 그 돈으로 전답을 마련했다고 한다.
[건립 경위 및 변천]
단암사는 백제 무왕 때 서암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고려 말 서암 스님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조선시대인 1470년(성종 1)에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진묵(震默) 일옥(一玉)[1562~1633]이 동굴 속에 미륵전을 지었고 그 후 다시 중건했지만 1598년(선조 31)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 1921년에 신중탱화를 봉안하였고, 1935년 박해안(朴海雁) 스님이 단암사를 크게 중건하였다. 당시 시주자의 명단을 적은 현판이 인법당에 걸려 있다. 1941년에는 삼세후불탱화를 봉안하였다. 1929년에 요사채가 전소되었으나 1955년 현재 건물로 증축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월광사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에 의하면, 원랑선사가 29세 되던 해 성린대사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승관에 임명을 받아 단암사에 머물며 중국으로 유학을 가기 전까지 수행을 했다고 한다. 만일 탁본 상의 ‘단암사’가 이곳이 맞다면 단암사의 창건 시기는 통일신라 이전 백제 때 창건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조선 중기 때까지는 다남사(多男寺)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현재 단암사 앞 개울은 작은 개울로 변했지만 과거에는 마을 사람들이 배를 타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전한다.
[활동 사항]
단암사는 사찰의 중창 불사를 위해 기원 법회를 연중 시행한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단암사는 석굴 안에 조성된 미륵전과 인법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단암사 주지는 현성 스님이고, 신도는 100여 명 내외 소규모 현대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