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3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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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一九八五年 高山-農民會-鬪爭 |
영어공식명칭 | Cattle droving Struggle of Catholicism Peasants' in 1985 |
이칭/별칭 | 1985년 고산 가톨릭농민회 소몰이 투쟁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7길 20[읍내리 99]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대길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85년 7월 19일 - 1985년 고산 카톨릭농민회 소몰이 투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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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시기/일시 | 1985년 7월 19일~1985년 9월 23일 - 1985년 고산 카톨릭농민회 소몰이 투쟁 완주군에서 진안군, 임실군, 부안군으로 확산 |
종결 시기/일시 | 1985년 9월 - 1985년 고산 카톨릭농민회 소몰이 투쟁 종결 |
발생|시작 장소 | 1985년 고산 성당과 카톨릭농민회 소몰이 투쟁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7길 20[읍내리 99] |
종결 장소 | 1985년 고산 성당과 카톨릭농민회 소몰이 투쟁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팔달로 251[서노송동 639-40] |
[정의]
1985년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서 고산성당과 고산 카톨릭농민회가 주축이 되어 일으킨 농민운동.
[개설]
1985년 7월, 천주교 전주교구 고산교회[고산성당]의 문규현 신부와 신자들이 중심이 되어 “외국농축산물 수입 반대와 소값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시작, 성직자 폭행과 십자가 훼손이라는 종교 탄압 등이 벌어졌으나, 1985년 9월에 마무리된 농민운동으로 “소와 쇠고기 수입 중단, 학자금 지원, 영농자금 이자 인하, 사료 값 인하, 소 융자금 이자 및 원금상환 연기 등” 성과를 거두었다.
[역사적 배경]
1980년대 초, ‘개방농정’으로 인해 국내에 400여 종 외국 농축산물이 들어왔고, 1985년에는 외국 농축물의 무분별한 수입이 가속화되었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농민은 소 사육 농가였다. 이에 “외국 농축산물 수입 반대와 소 값 피해 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를 ‘소몰이 시위’라 부른다.
[경과]
1985년 7월 19일 카톨릭농민회 완주군협의회가 주관하는 시위가 고산성당 관할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주된 내용은 “정부는 외국 농축산물 수입을 즉각 중단하라. 정부는 소 값 피해를 전액 보상하라. 정부는 소 융자금과 이자를 전액 탕감하라. 정부는 농축산물 생산비를 보장하라” 등이었다. 이후 시위는 전라북도 진안군으로 확대되었고, 1985년 7월 28일 고산성당에서 다시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때 불상사가 벌어졌다. 시위대가 고산성당을 나서자마자 무장한 경찰과 대치했는데, 이때 십자가를 탈취당하고, 문규현 신부와 여러 사람이 심한 폭행을 당했다. 교회의 상징인 십자가를 탈취당하고, 성직자가 무참히 폭행당한 사태는 우발적 상황이 아니었다. 이에 시위에 참여한 농민회원들은 전주카톨릭센터[현 천주교전주교구청가톨릭센터]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고, 1985년 8월 4일 성명서를 발표하며 농성을 풀었다.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서 일어난 시위 이후 1985년 8월 6일 임실성당을 중심으로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소몰이 시위가 전개되었고, 1985년 8월 24일에는 부안성당 관할 등용공소[현 천주교 전주교구 등용교회]에서 “소 값 피해보상과 외국 농축산물 수입 중단을 위한 집회 및 시위”가 벌어졌다. 그런데 부안 시위에서 또다시 경찰이 만행을 자행했다. 이처럼 전주교구 내 전라북도 고산면, 전라북도 진안군, 전라북도 임실군, 전라북도 부안군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 소몰이 시위는 1985년 9월 23일 전라북도 전주시 중앙성당[현 천주교전주중앙교회]에서 카톨릭농민회전북연합회가 주최한 “외국 농축산물 수입반대 농민대회”로 절정을 이루었다. 외국 농축산물 수입반대 농민대회에서는 경과보고를 통해 짓밟히는 농민의 실상을 고발하면서 당국의 적절한 대책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결과]
1985년 전라북도 고산면에서 시작한 카톨릭농민회가 주도한 소몰이 투쟁의 결과 정부는 “소와 쇠고기 수입 중단, 학자금 지원, 영농자금 이자 인하, 사료 값 인하, 소 융자금 이자 및 원금상환 연기 등” 조처를 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1985년 한여름의 무더위와 함께 전개된 고산 카톨릭농민회 소몰이 투쟁은 그 동안 벼랑으로 내몰린 농민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음을 절박하게 인식하고, 농민의 생존권은 농민이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남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