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5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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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潘南朴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
집필자 | 강민식 |
세거지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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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
입향시기/연도 | 조선 전기 |
성씨시조 | 박응주 |
입향시조 | 박규|박강 |
[정의]
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박규와 박강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연원]
반남박씨(潘南朴氏)의 세계(世系)는 고려 고종 때 반남현(潘南縣) 호장(戶長)을 지낸 박응주(朴應珠)에서 시작된다. 그는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손이지만, 상계가 실전(失傳)되어 혈연 계보와 분적의 연원을 밝히지 못한다. 그래서 반남박씨는 그를 시조라 하지 않고 선조(先祖)로 하고, 박혁거세를 도시조로 하고 있다. 선조의 발상지와 세거지가 반남이므로 이를 본관으로 하였다.
반남박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15명, 왕비 2명, 상신 7명, 대제학 2명, 호당 5명, 청백리 1명, 공신 6명, 장신 3명에 문묘(文廟)에 배향된 자도 1명이 있어 모든 박씨 중에서 벼슬 경력이 가장 화려하다. 반남박씨가 이토록 번영을 누리게 된 것은 문정공(文正公) 박상충(朴尙衷)이 고려 말에 정계에 두각을 드러내고, 그의 아들 평도공(平度公) 박은(朴訔)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반남박씨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문정공 박상충은 공민왕 때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등을 지낸 인물이며, 그의 아들 박은은 고려 말에 개성부 소윤을 지내고 조선 개국 후 두 차례 왕자의 난에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좌명공신에 오르고 태종 때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오른 인물이다. 이후 박은의 아들 박규(朴葵)·박강(朴薑)·박훤(朴萱)은 모두 현달(顯達)하였으며, 특히 박규는 세종 때 예조와 형조의 참판과 경기도관찰사를 지냈다.
박규의 현손 박소(朴紹)는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왕도정치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다가 훈구파에 의해 파직되었으나, 박소의 아들 박응천(朴應川)·박응순(朴應順)·박응남(朴應男)·박응복(朴應福)·박응인(朴應寅) 5형제가 모두 현달하였다. 그 중 박응천과 박응복의 자손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활당(活塘) 박동현(朴東賢)과 박동선(朴東善)·박세견(朴世堅)·박태상(朴泰尙) 등이 있다.
[입향경위]
조선 태종 때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대제학과 좌의정을 역임한 박은(朴訔)의 장남인 박규(朴葵)의 후손과 차남인 박강(朴薑)의 후손이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로 이주하여 세거(世居)하기 시작하였다.
[현황]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진천군 관내에 거주하는 반남박씨는 87가구 240명으로 나타났다. 초평면 영구리 죽현(竹峴)마을에는 약 500년 전에 반남박씨가 처음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양성이씨가 와서 살게 되었고, 경주김씨가 새로 들어와 터전을 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는 현재 30가구가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