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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지사 조봉호 기념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203
한자 殉國志士趙鳳鎬記念塔
영어음역 Sunguk Jisa Jo Bongho Ginyeomtap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for Patriotic Fighter Jo Bongho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창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기념탑
건립시기/연도 1977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조봉호(趙鳳鎬)|최정식(崔靜埴)|문창래(文昌來)|김창국(金昶國)|임정찬(林貞燦)|윤식명(尹埴明)
높이 30m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 모충사(慕忠祠) 경내지도보기
소유자 제주시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항일지사 조봉호를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세운 탑.

[개설]

1919년 5월 군자금 모금 단체인 조선독립희생회 소속 연락원 김창규(金昌圭)는 상해 임시정부의 선포문과 해외통신문 등을 가지고 제주로 들어와 제주교회 김창국 목사, 조봉호, 최정식 등과 접촉하면서 조선독립희생회를 조직하여 줄 것과 회원 1인당 2원의 군자금을 모금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조봉호, 김창국, 최정식은 김창규가 가져온 문건들을 등사하여 교회를 통해 배포한 후, 군자금 1만 원의 거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는데, 당시 물가로 2원은 쌀 반 가마니에 해당하는 값이었다.

1919년 7월 송금 사건이 발각됨에 따라 조봉호 등 60여 명이 일제에 검거되었는데, 당시 조봉호는 동지들에게 ‘독립의 길은 멀다’라고 말한 후 혼자 책임지겠다며 동지들을 설득하였다. 이후 조봉호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의 판결을 받았으나 복역 중 1920년 4월 28일 37세를 일기로 대구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건립경위]

1919년 독립군 군자금 모금 운동 사건으로 복역 중 순국한 조봉호 지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도민의 이름으로 1977년 기념탑을 건립하였다.

[형태]

가로, 세로 10m의 십자가 기단 위에 20m 높이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기념비 상부에는 5개의 한국 고유의 완자무늬가 있다. 십자가 기단은 조봉호의 기독교적 애국정신을 뜻하며 완자무늬는 조국의 독립을 의미한다.

[의의와 평가]

1919년 기미독립만세를 축복하며 조봉호가 기록한 수첩이 독립기념관에 유품으로 소장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우리 삼천리 금수강산 2천만 민중이 손가락을 깨물어 선혈로 태극기를 그리고 손에 손에 드니 충천의 기개로다. … 동포 여러분! 분기하여 독립의 대도에 함께 매진합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러한 구절처럼 의로운 조봉호의 기상은 이제 사라봉 기슭에 우뚝 솟은 기념탑에 남아 역사를 굽어볼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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