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3570
한자 崔雲遇
영어음역 Choe Unu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도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선비
아버지 최호(崔浩)
어머니 강준지(姜俊智)의 딸
최운원(崔雲遠)
아우 최운달(崔雲達)
출신지 강릉
성별
생년 1532년(중종 27)연표보기
몰년 1605년(선조 38)연표보기
본관 강릉
제향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 2920-16[교동 238-3번지] 향현사(鄕賢祠)지도보기
대표관직 현감

[정의]

조선 중기의 선비.

[개설]

최운우(崔雲遇)강릉 12향현 중의 한 사람이다.

[가계]

본관은 강릉. 최문한(崔文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교수 최담(崔澹)이고, 어머니는 진주 강씨(晋州姜氏) 참봉 강준지(姜俊智)의 딸이다. 진사 최호(崔浩)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김광진(金光軫)에게서 수학한 최운우는 1552년(명종 7) 생원에 급제하였고,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는 못했다. 1554년(명종 9) 이황을 찾아가 학문을 물었으며, 이이와는 24살 때부터 교류하며 도의지교(道義之敎)로 사귀었다. 이밖에도 당대의 유학자인 성혼·정탁·정유일·양사언 등과 교유하였다. 성품이 너그럽고 순후하여 마을 사람들이 존경하고 복종하였다고 한다.

1595년(선조 28)에 최운우가 횡성현감으로 부임해 갈 때, 이달(李達)이 그에게 보낸 시에서 “앞길이 험하고 세월도 별로인데, 그대가 임무 띠고 먼 길을 가는구만. 뛰어난 재주는 옛 일을 회상케 하고, 보잘 것 없는 벼슬 평생토록 부담될 걸세. 바닷가 언덕에는 매화가 만발하고, 산과 들 여기저기 새소리 구성지네. 헤어지는 이 마음 쓸쓸하기 짝이 없어, 경치에 마음을 달래보나 이별의 정을 어이 이기리.”라 하였다. 최운우는 현감에 부임한 지 몇 달 뒤 노환을 핑계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활동사항]

일찍이 우리나라의 서남에는 서원이 많이 세워졌으나 강릉에는 하나도 없다고 하여 1556년(명종 11)에 함헌(咸軒)과 함께 오봉서원 건립에 앞장서는 등 풍속 교화와 문풍 진작에 남다른 노력을 했다.

1600년(선조 33) 「연곡향약」을 시행하게 되었을 때에는, 강릉부 전체를 관장하는 도약정(都約正)으로 향약 운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연곡향약」율곡의 「해주일향약속(海州一鄕約束)」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최운우「연곡향약」 시행은 기묘사류들이 성리학 보급을 통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시키기 위해 「여씨향약」 보급에 힘쓴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학문과 사상]

36세 때인 1567년(명종 22) 이이가 보낸 글에서 나타나듯이 실천궁행(實踐躬行)을 근본으로 하는 성리학에 심취해 있었다. 일찍이 이이가 중요한 지위에 있을 때 시무(時務)를 올렸는데, 이이는 그의 도움을 얻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그의 학문적 깊이를 알 수 있다. 후일 송시열이 묘표(墓表)를 지어 최운우의 높은 뜻을 추모하기도 했다.

[묘소]

현재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으나 강릉부 북쪽 50리 되는 신리면 향동산(香洞山)에 묘를 썼다고 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