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16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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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六二五戰爭 |
영어공식명칭 | the Korean War |
이칭/별칭 | 한국전쟁,6·25사변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상준 |
[정의]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까지 서울특별시 동작구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개설]
1950년 6월 28일 오전 11시 30분, 북한군은 전쟁 발발 3일만에 서울 시내에 진입하였다. 국군은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지연시키기 위해 한강 전선을 필사적으로 사수할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한강 이남인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흑석동 일대[당시 영등포구]는 국군과 북한군 모두에게 군사적 요충지로서 이 일대에서 전투가 발생하였다.
[역사적 배경]
6월 28일 육군본부는 김홍일(金弘壹) 소장을 시흥지구전투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전선에서 후퇴해 오는 부대 장병들을 수습하여 부대를 재편성하고 한강선에서 방어임무를 담당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김홍일 소장은 낙오자 수습에 착수하여 후퇴해 온 장병들의 원 소속부대를 고려하지 않고 혼성부대를 편성하였다. 이에 따라 영등포 지역에는 수도사단 잔여병력이, 노량진 지역에는 제7사단의 잔여병력이 도착하여, 수도사단은 혼성 수도사단, 제7사단은 혼성 제7사단으로 호칭되었다.
[경과]
서울에 진입한 북한군은 한강선의 상황과 미군의 개입 여하에 따르는 정황변화에 입각하여 차후작전의 방침을 결정하고자 하였다. 이미 용산과 노량진을 잇는 한강대교[한강인도교]를 비롯한 모든 교량이 폭파된 상태에서 이들은 적합한 도하장비를 가지고 있지 않아, 주력인 5개 사단[제1, 3, 4, 6사단 및 제105전차사단]이 한강 도하를 준비하고 남한군의 한강방어선을 탐색하면서 공격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이에 따라 6월 28일과 29일 양일간 서울에 머물면서 한강 이남에 대하여 산발적인 포격을 실시하였을 뿐이다.
북한군 3, 4사단은 29일부터 도하작전을 위해 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한남동 일대에서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흑석동 일대로 지형정찰을 실시하였다. 이들은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흑석동 방면에 공격을 하면서 실제 도하는 양 측방의 영등포와 신사리 방면에서 실시하고자 하였다. 반면에 국군은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흑석동 지역을 북한군의 주공으로 판단했고 혼성7사단을 비롯해 병력을 증원하면서 화력의 우선권을 부여하였다.
북한군은 29~30일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흑석동 방면에 포격을 가하면서 소규모 부대를 계속해서 투입하였으나, 연이어 국군에게 저지 또는 격멸되었다. 이는 본격적인 도하작전은 아니었고, 그 주목적은 아군의 전투력 탐색, 진지교란, 그리고 앞으로 있을 도하작전을 위한 한강 이남의 교두보 설치에 있었다. 그리고 북한군은 7월 1일 국군 복장으로 변장한 1개 소대를 침투시켜 국군에게 화력을 유도함으로써 교두보를 확보하고 노량진의 일부 방어선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이들은 도하장비가 부족하고, 미 공군의 항공폭격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피해를 입고 있던 상황이었다. 계속해서 교두보 확장에 실패하자 결국 북한군은 주공(主攻)을 최초 조공(助攻)이었던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흑석동 방면으로 전환하고 교량 복구 작업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튿날인 2일에는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일대[지금의 효사정공원 주변]에서 도강한 북한군과 국군 제9연대간의 전투가 있었다.
[결과]
김일성은 서울을 완전히 점령한 뒤, 북한군에 점령된 ‘해방지구’의 전권위원으로 남한에 파견된 이승엽(李承燁)을 서울시 임시인민위원회 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사위원회 서울시 대표로 임명했다. 이승엽은 해방지구 서울의 최우선 과제로 인민위원회의 복구로 삼았다. 이승엽은 인민위원회를 토대로 “영용한 빨치산을 본받아 원쑤들이 파괴한 도로와 교량을 시급히 복구하여 인민군대의 후방공급을 보장하며, [중략] 인민군대로 하여금 매국 역도들을 철저히 소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방향에 따라 서울이 점령된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를 비롯해 서울의 9개구 전체에서 구(區) 인민위원회가 복구되었다.
[의의와 평가]
서울특별시는 2020년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6·25전쟁 격전 상흔지 총 50개소를 발굴하였다. 이에 따라 8월 31일 초기 한강방어선의 주요 전투지로 역사적 의미가 있는 노량진, 흑석동 전투를 기념하고자 사육신묘공원과 효사정공원에 표지판을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