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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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남향 |
[개설]
동남구 병천면은 천안 삼거리로 향하는 길목에 있어서 예로부터 장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병천(竝川)’은 두개의 내를 아우른다는 뜻에서 순우리말로 ‘아우내’라 하는데, 5일장인 병천장 또는 아우내장이 1일·6일·11일·16일·21일·26일에 서면 인근 지역에서 모여든 장사꾼들과 주민들로 가는 곳마다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어느 장에서든 국밥 한 그릇이면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가난한 장꾼들의 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국밥만한 음식이 없었다. 특히 순댓국밥은 값싸고 푸짐하여 아우내 장터의 명물이 되었다.
[손님이 끊이지 않는 장터]
1950년대 이전에는 순대를 팔던 집이 한두 집에 불과하였지만 그래도 장날이면 으레 국밥집이 문을 열었고 야외에 자리를 깔고 손님을 맞았다. 솥을 걸 부뚜막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순대를 팔 수 있었다. 작은 주막에는 손님이 넘쳐 났다.
병천 순대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시기는 1960년대로, 면내에 돼지고기를 취급하는 햄 공장이 생기면서부터이다. 공장에서는 햄의 주재료인 살코기를 사용하고 남은 내장을 장터에 팔았다. 주인들은 이 내장을 사서 각종 채소와 선지를 넣고 먹음직스럽게 순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1950년대 이전까지 주막에서는 장날에만 손님을 받았다. 그러다가 1960년대를 전후하여 평소에도 영업하는 식당이 생겼고, 식당마다 순대 특유의 비린내를 없애려는 특별한 방법을 고안하여 차별화된 순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또한 그렇게 대를 이어서 2대, 3대째 국밥집을 운영하는 식당도 생겨났다.
몇몇 가게는 30년 전에 처음 간판을 걸었던 모습 그대로 현재까지 영업하고 있다. 가게를 넓힐 만한 여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대로 이어온 맛을 유지하는 것은 가게의 규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주인의 마음 때문에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려서 먹어 본 국밥의 맛을 잊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꾸준히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장날에는 특히 손님이 많다. 과거에는 가을철과 겨울철에 계절 음식으로 인기가 많았다. 요즘은 계절에 관계없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천안·아산 등 근처 도시보다 멀리 서울·경기 등 외지인들이 찾아오는 비율도 훨씬 높아졌다. 휴가철이나 아이들 방학, 주말을 이용하여 일부러 찾는 이들도 있다. 오랜 단골들은 가게마다 맛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느낄 정도로 순대를 좋아한다.
[각종 채소와 선지로 만든 병천 순대]
오늘날 전국적으로 ‘병천 순대’라는 상호를 걸고 영업하는 식당은 무려 1,000여 곳이 넘는다. 적지 않은 가게가 병천 순대와는 무관하게 이름만 빌리고 있다. 사실 병천 순대는 보통 순대와는 재료부터가 다르다. 일반 순대는 부재료로 당면과 찹쌀을 많이 넣는데, 병천 순대에는 20여 종류의 채소를 다져 넣어서 크고 먹음직스럽게 만든다.
순대를 대량으로 생산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그전에는 가게에서 직접 돼지 창자에 소를 넣어서 순대를 만들었다. 돼지 내장 중에서도 질기지 않고 부드러운 소창을 소금물로 깨끗이 씻어서 그 안에 소를 채워 넣었다. 소창의 한쪽 끝을 실로 꼭 묶고 잘게 다진 채소를 고르게 집어넣어야 하는데 능숙하지 않으면 이 또한 어려운 일이다.
소는 양파·대파·배추·부추 등 각종 채소를 다져 넣고, 비린내를 없애면서 담백함을 더하려고 들깨와 찹쌀을 갈아 넣는다. 마늘·생강도 냄새를 없애는 데에 도움이 되어 다져 넣는다. 요즘은 여러 채소 중에서도 양배추를 많이 쓰는 편이다. 당면은 거의 넣지 않고 그 대신에 선지를 섞어서 담백함을 더한다. 깔때기 모양의 도구를 사용하여 창자에 소를 집어넣는데 채소가 울퉁불퉁하게 한곳으로 몰리지 않도록 주의한다.
소를 채운 뒤 한쪽 끝을 다시 실로 묶어서 삶는다. 뜨거운 수증기 때문에 기포가 생기는 곳이 있으면 바늘로 찔러서 공기를 빼낸다. 잘못하여 한 곳이라도 터지면 손님상에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차례 삶은 순대를 상에 낼 때에는 솥에 쪄서 따뜻하게 낸다.
순댓국밥의 국물은 흔히 사골을 우려서 낸다. 구수한 국물에 순대를 넣고 한소끔 끓여서 내면 기호에 따라서 파·들깨·양념장 등을 넣어서 먹는다. 국밥집에서는 깍두기와 김치 이외에는 특별히 찬이 필요 없다.
[순대 특화 거리의 조성]
천안시에서는 소상공인들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다섯 개 지역에 특화 거리가 생기는 것을 독려하였다. 그중 한 곳이 바로 병천 순대 거리이다. 이곳은 독립 기념관,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 등과 함께 천안을 대표하는 명소로 천안 12경에 속할 만큼 유명해졌다.
장날이면 곳곳에 각종 나물·채소·어물 등을 파는 좌판이 늘어선다. 장터 한가운데에는 청화집과 충남집을 비롯한 20여 개가 넘는 순대 전문 음식점들이 길게 늘어섰다. 대부분 15년 이상 된 집들이지만 그중에서도 청화집은 병천 순대의 원조로 이름이 나 있다. 처음에는 시장 상인들에게 모둠순대와 순댓국밥을 팔다가 1968년에 처음으로 간판을 걸었다. 이를 시작으로 충남집·돼지네 같은 순대 전문 음식점이 생겨났다. 청화집의 입구에는 ‘전통문화 가정 인증서’가 붙어 있다. 그 연혁을 살펴보면 70여 년의 세월 동안 1대 김일분 부터 3대 이경란까지 가업으로 국밥집을 운영했음을 알 수 있다. 가게의 위치가 외지고 주차장이 협소하긴 하지만 단골이 끊이지 않는 음식점이다.
천안시에서는 병천 순대를 더욱 널리 알리는 방편으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순대의 영양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소비자에게 알리고, 순대 가공 공장을 설립하여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 가게의 업주와 직원을 대상으로 영양학·서비스·위생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고 주기적으로 자리를 마련하여 병천 순대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어느 한 업소라도 문제가 생기면 결국 모두가 타격을 받게 되는 일이므로 철저하게 준비하는 셈이다.
2011년도에는 가게들이 많은 피해를 보았다. 구제역에 양배추 파동까지 겹친 탓이었다. 저렴한 수입산 돼지고기를 쓰지 않는 터라 그 피해는 더욱 심했다. 그래서 순대 가격을 부득이 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한 그릇에 5,000원이던 국밥이 6~7,000원으로 인상되었고 8,000원이던 모둠순대는 1만 원으로 올랐다.
병천 순대 거리 가까이에는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 독립 기념관, 천안 김시민 장군 유허지, 유석 조병옥 박사 생가를 비롯하여 관광 리조트가 들어섰다. 시에서도 이곳 순대 거리를 홍보하고자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10~15분 간격으로 버스를 운행하도록 하였고 시청에서는 특화 거리를 중심으로 순환 버스를 운행하여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주말과 장날에는 5,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순대 거리를 찾고 있다. 앞으로도 시에서는 주차 시설을 완비하여 더 많은 사람이 다녀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처럼 장꾼들의 주린 배를 채워 주던 장터 음식 병천 순대는 예나 지금이나 담백한 맛과 주인의 푸근한 인심은 변함이 없다는 평을 들으며 오늘날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