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442
한자 盈德時庵古宅
이칭/별칭 영양남씨 시암생가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창수영해로 305[원구리 217-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9년 - 영덕 시암고택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4년 - 영덕 시암고택 보수
문화재 지정 일시 2010년 6월 10일연표보기 - 영덕 시암고택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76호 지정
현 소재지 영덕 시암고택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창수영해로 305[원구리 217-1]지도보기
원소재지 영덕 시암고택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창수영해로 305[원구리 217-1]
성격 전통 가옥
정면 칸수 5칸[정침]|1칸[사당]
측면 칸수 5칸[정침]|1칸[사당]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76호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양남씨 남고의 살림집.

[개설]

영덕 시암고택(盈德時庵古宅)원구리에 세거하는 영양남씨 일족의 살림집이다. 택호는 남고(南皐)[1807~1879]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남고의 자는 중원(仲元), 호는 시암(時庵)이다. 류치명(柳致明)의 문인이다. 『시암선생문집(時庵先生文集)』 등 많은 서책을 편찬하였다.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창수영해로 305[원구리 217-1]에 있다. 원구리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데,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영덕 난고종택(盈德蘭皐宗宅)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변천]

영덕 시암고택남진만(南震萬)[1697~1773]이 지은 살림집을 후손 남교성(南敎成)이 친족인 남고에게 매도한 것이다. 남고는 살림을 나면서 이 집을 구해 크게 중수하였다. 1959년 태풍 사라로 정침과 사당이 침수되어 기둥과 벽체, 구들, 마루, 담장 등을 보수하였다. 그 후 영해향교 구와(舊瓦)를 이용해 정침 번와(翻瓦)[지붕의 기와를 갈아 덮음], 노후한 서까래 교체, 부엌 입식으로 개조, 기름보일러 설치, 블록 담장 교체 등의 수리를 하였고, 2004년에 사당 번와 공사, 감실 보수, 토석담장 보수 등 크고 작은 보수 작업을 하였다.

[형태]

마을 앞 도로 북쪽의 평지로 조성한 대지에 완결형 뜰집의 정침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로와 연결된 골목을 통해 동쪽으로 접근하면, 작은 앞마당을 두고 그 뒤로 정침이 동향하며, 북쪽에는 사당이 자리한다. 정침은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에 'ㄱ' 자형 안채와 'ㄴ' 자형 사랑채가 결합된 완결형 뜰집이다. 안채는 3칸 안마당에 면해 안대청이 있고, 그 좌측으로는 마룻바닥의 통래칸을 앞에 둔 상방, 우측으로는 안방이 정지, 고방으로 연결되어 우익사를 구성하였다.

안마당 중간에 난 중문간 우측에는 마구, 좌측으로는 사랑방 사랑마루가 있다, 사랑마루 뒤로는 중방, 고방이 상방 앞 통래칸으로 이어져 좌익사를 이룬다. 하지만 현재 정지 앞 도장은 부엌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그 뒤쪽으로 조립식 1칸의 샤워실을 달아 내었으며, 사랑마루는 방으로 꾸몄다. 또한, 상방과 연접된 통래칸은 정침 밖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막혀 있다. 구조는 자연석 기단에 네모기둥을 세운 뒤 주상부에는 민도리 형식으로 꾸며 처마를 받쳤고, 지붕가구는 안대청에만 2고주 3량가, 그 외는 평주 3량가이다. 지붕은 홑처마에 복합형이다.

사당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이며, 주칸은 정면이 약간 넓다. 내부에는 감실을 만들어 조상의 위패를 보관하고 있다. 지붕가구는 3량가이고, 홑처마 맞배지붕에 한식기와를 이었다. 사방에 기와담장을 둘렀으나 출입문은 없다.

[현황]

2010년 6월 10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19세기에 중수한 완결형 뜰집과 사당으로 구성된 살림집으로 정침은 경상북도 북부 및 영덕 지역 살림집의 제반 특성을 갖추었지만 생활편의에 맞춰 내부공간의 다수가 변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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