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422
한자 盈德務安朴氏武毅公派宗宅
이칭/별칭 박의장생가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길 17-4[도곡리 12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16년 4월 27일연표보기 -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 국가민속문화재 제286호 지정
현 소재지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길 17-4[도곡리 127]지도보기
원소재지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길 17-4[도곡리 127]
성격 전통가옥
정면 칸수 10칸[정침]|3칸[사당]
측면 칸수 7칸[정침]|2칸[사당]
소유자 무안박씨 무의공파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제286호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개설]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盈德務安朴氏武毅公派宗宅)은 무의공 박의장(朴毅長)의 후손이 대대로 거주하는 집이다. 박의장의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사강(士剛), 호는 청신재(淸愼齋), 시호는 무의(武毅)이다. 김언기(金彦璣)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1577년(선조 10)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군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위치]

축산천변으로 넓은 곡간평야가 펼쳐진 곳에 자리한 축산면사무소가 있는 도곡리에 있다. 종택은 동쪽의 대소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남록에 배산하고, 전방의 축산천을 향해 터를 잡은 마을 복판에 남향하고 있다. 종택 동쪽의 산록에는 영덕도곡동충효당, 경렴정, 흥교당 등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은 옛날 축산항의 포구가 이곳까지 이어져 배가 다녔다고 하여 반포(攀浦)라 하였으며, 그 뒤 여러 차례의 폭우로 산사태가 나서 포구가 메워져 개천이 되자 마을 이름을 번계(攀溪)라고 하였다. 지금은 영덕읍에서 평해읍으로 이어지는 동해대로에서 마을로 접근한다.

[변천]

영해 원구리에 문중기반을 마련한 무안박씨박의장의 장남 박유(朴瑜)[1576~1618]가 생시에 어머니 영천이씨로부터 도곡으로 이주하여 종가를 건립할 것을 유훈을 받았다. 이후 박유의 아들 박문립(朴文立)[1602~1673]은 1630년대 초반에 아버지의 막냇동생인 도와 박선(朴璿)[1596~1669]의 도움을 받아 축산면 도곡리로 이거하고 1638년에 지금의 종택을 건립하였다. 1655년에는 박선도 이곳으로 이거해 저택인 충효당을 지음으로써 무안박씨 영해파가 원구리에서 축산면 도곡리로 이주 분가해 종가를 중심으로 경제력 결집, 선조 선양사업, 학문적 도야를 통한 문중 결속과 가학의 진흥을 통해 영남의 명문가로 성장하는 데 중심공간이 된 곳이다.

[형태]

종택은 정침과 그 동북쪽에 사당, 출입문인 솟을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고남저한 경사지에 터를 잡고 제일 지대가 높은 북쪽에 불천위사당이 있고, 그 남쪽으로 정침을 지형에 맞춰 남동향으로 앉혔으나 정침과 불천위사당의 좌향은 약간 달리 하였다. 정면 7칸, 측면 1칸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다소 좁은 사랑마당 뒤로 정면 10칸, 측면 7칸 규모의 연결형 뜰집에 사랑채가 돌출된 정침이 있다. 정침은 크게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ㄱ' 자형의 안채 영역과 그 전방에 정면 10칸, 측면 3칸의 '⊥' 자형 사랑채 영역,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정면 2칸, 측면 1칸의 '一' 자형 도장채 영역으로 구분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도장채가 안채의 상방 옆으로 비껴 통래칸 1칸을 두고 배열된 점이다.

안채 평면은 6칸 규모의 우물마루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2통간의 안방과 정지를 두었고 좌측에는 상방을 배치한 겹집형이다. 안방 뒤로는 도장이 있고, 천장에는 다락이 설치되어 있다. 3칸통의 넓은 정지 앞으로는 찬방, 고방 1칸씩을 연이어 배열해 작은 사랑방과 마주한다. 안대청 상부가구는 종량 위에 제형판대공을 세운 비교적 소박한 모습을 한 5량가이다. 사랑채는 중문간을 중심으로 좌측에 책방, 사랑방, 사랑마루로 구성되어 있고, 우측으로는 작은 사랑방이 중문간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사랑방과 사랑마루는 중문간과 안채보다 돌출된 겹집이다. 사랑방과 사랑마루는 경사 대지를 이용해 전면은 누하주를 둔 누각형이다.

사랑 대청 주위의 기둥은 모두 원주를 사용하였는데, 기둥 윗부분에는 익공계로 분류할 수 있는 특이한 초각재로 장식하였다. 대량 위에 포대공을 세워 종량을 받게 하고 그 위에 파련대공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치는 5량가 구조이다. 사랑 대청에는 박의장의 호를 딴 청신구택(淸愼舊宅) 현판이 걸려 있다. 솟을대문은 좌측에 정지, 문간방이 있고, 우측에 문간방, 마구,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초익공계 건물로 전면은 원주를 세웠으며 박공면에는 풍판을 달았다.

사당에서는 무의공 박의장의 불천위 제사를 지내는데, 무의공은 나라에서 내린 불천위로 이를 ‘국불천위(國不遷位)’라고 한다. 1622년 자헌대부호조판서로 추증(追贈)하는 교지가 내릴 때 교지에 첨기된 ‘명부조(命不祧)’라는 문구에 의거하여 불천위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현재 그 교지는 분실되고 없으나 불천위와 관련된 기록은 족보나 분재기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현황]

2016년 4월 27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종택의 불천위 고위 제사는 음력 1월 25일, 비위 제사는 음력 7월 17일에 거행한다. 부부의 신주를 함께 모시는 합설의 형태로 새벽 1시경에 지낸다.

[의의와 평가]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은 임진왜란 때 공신인 무의공 박의장의 종택으로 솟을대문, 연결형 뜰집의 정침, 불천위사당을 엄격한 공간분화와 독립영역을 확보한 전형적인 경북 지역의 상류주택이다. 사랑채를 안채보다 돌출해 배치한 점, 후대 박선의 저택인 ‘영덕 무안박씨 충효당’과 동일한 평면구성은 건립 시기 및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다. 특히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도장채가 연결형의 배치 구성을 이룬 것은 각 채의 건립 시기차에 따른 건축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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