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홀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310
한자 也尸忽郡
영어공식명칭 Yasiholgun
이칭/별칭 진안현,야성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방용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삼국 시대 - 야시홀군 설치
개정 시기/일시 757년 - 야시홀군 야성군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940년 - 야시홀군 야성군에서 영덕군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1018년 - 야시홀군 영덕군에서 예주(禮州)에 영속
관할 지역 야시홀군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지도보기|강구면지도보기|남정면지도보기|달산면지도보기|지품면지도보기

[정의]

삼국 시대부터 757년까지 영덕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개설]

야시홀군(也尸忽郡)은 본래 고구려의 영토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보인다. 5세기 후엽에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삼국 통일 이후 경덕왕이 야시홀군야성군(野城郡)으로 개칭하였다. 영현(領縣)으로는 조람현(助欖縣)·청기현(靑己縣)이 있는데, 모두 고구려 때의 지명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강구면·남정면·달산면·지품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야시홀군은 고구려가 동해안 일대로 진출하여 영덕 지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고, 남쪽으로 신라를 공략하기 위해 설치한 지방 행정구역이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35 지리지 명주(溟州)조에는 "야성군은 본래 고구려의 야시홀군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 시대]의 영덕군(盈德郡)으로 영현은 2개이다. 진안현(眞安縣)은 본래 고구려의 조람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보성부(甫城府)[청송군 진보면]이다. 적선현(積善縣)은 본래 고구려의 청기현(靑己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청부현(靑鳧縣)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한편 『삼국사기』 권37 지리지 하슬라주(何瑟羅州)조에는 고구려의 지명으로 야시홀군을 간략하게 소개해 놓았다.

[내용]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야시홀군은 본래 고구려의 영토였으나 신라가 빼앗았고, 경덕왕 대에 야성군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소속 현으로 기록된 2개 현 역시 고구려 때부터 내려온 지명이다. 조람현은 고구려의 옛 지명으로, 경덕왕이 진안현으로 고쳤다고 하는데,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과 영덕군 지품면·달산면 일대에 해당한다. 청기현 역시 고구려의 옛 지명인데, 경덕왕이 적선현으로 고쳤다고 하며,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일대에 해당한다.

삼국 시대 및 통일 신라 시대의 야시홀군이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을 중심지로 삼아 청송군 북부까지 관할하였으며, 이를 통해 동해안과 지금의 ‘안동-영양’ 등 내륙 도시를 연결하는 중요 교통로의 거점이 되었다. 야시홀군은 고구려의 광개토왕과 장수왕이 신라에 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던 시기[400~481년] 혹은 장수왕이 신라를 공격하여 흥해 지역까지 진출하였던 시기[468~481년]에 설치하였으리라 추정되지만 정확한 연대는 단정할 수 없다. 고구려가 지방관을 파견하여 직접 지배하거나 재지세력을 재편하지는 못하였고, 군사적으로 장악한 시기도 짧아 5세기 후반에는 신라에 편입되었다.

[변천]

야시홀군은 757년(경덕왕 16)에 야성군으로 개칭되었으며, 940년(고려 태조23)에 영덕군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는 예주(禮州)에 영속되었다.

[의의와 평가]

야시홀군의 설치와 운영은 고구려와 신라 간의 동해안 일대 각축전과 지방 통치 방식, 내륙 거점 도시와 동해안 지역의 교통로 운영 원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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