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163
한자 丑山里
영어공식명칭 Chuksan-ri
이칭/별칭 축산도,축산포,축산동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축산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895년 5월 26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영해군 남면 축산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 - 경상북도 영해군 남면 축산포에서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축산동으로 개편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8년 5월 1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축산동에서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축산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5.28㎢
가구수 719세대
인구[남/여] 1,207명[남 570명|여 637명]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축산리영덕군 축산면의 동쪽에 자리하며, 행정동은 축산1리·축산2리·축산3리로 분동되어 있다. 축산1리는 8세기 중기인 신라시대 경덕왕(景德王)[742~765] 때 청주한씨(淸州韓氏)가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뒤로 대소산(大所山)이 있고 좌우에 와우산(臥牛山)과 죽도산(竹島山)이 있는 가운데 자리한 마을이다. 축산2리에는 자연 마을로 염장(鹽場)마을, 양장(羊腸)마을, 양장(良庄)마을 등이 있고 축산3리는 죽산동[또는 신기마을]이 있다.

[명칭 유래]

축산리(丑山里)축산항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 뒤쪽의 대소산과 와우산 및 죽도산이 좌우로 뻗어 큰 황소가 누워 있는 것과 같은 형국(形局)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축산도(丑山島) 또는 축산포(丑山浦)라고도 하였다. 축산이란 지명이 처음 확인된 것은 고려 말 영해로 귀양 온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의 『양촌집(陽村集)』 「사재소감 박강전(司宰少監 朴强傳)」에 '축산도병선도관령(丑山島兵船都管領)'이란 관직명에 그 지명이 나오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에 축산포라는 지명이 보인다.

염장(鹽場)마을은 1790년(정조 14)경 동해의 해일로 인하여 염수(鹽水)가 스며들어 붙여진 이름이고, 양장(羊腸)마을은 1490년(성종 21)경 영해박씨(寧海朴氏)가 입주하여 양을 사육하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며, 양장(良庄)마을은 약 300년 전에 김복용(金福龍)이라는 인물이 현 구평들을 개척하여 좋은 농장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죽산동은 죽도산(竹島山) 밑으로 1690년(숙종 16)경 오씨(吳氏)가 개척하여 추씨(鄒氏)라는 인물과 함께 대나무를 심고 죽산동(竹山洞)이라 하였다고 하며, 일명 신기(新基)마을이라고도 부른다.

[형성 및 변천]

축산리는 조선시대에 영해부(寧海府)에 속하였으며,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영해군(寧海郡) 남면(南面) 지역으로 축산포영(丑山浦營)을 두고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있었는데, 1914년 4월 1일 일제 총독부령(總督府令) 제111호로 전국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양장동(良庄洞)·차유동(車蹂洞)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축산동이라 하고 영덕군 축산면에 편입되었다. 그 뒤 1945년에 신기동·이부동·통사부동을 축산1동으로, 양장을 축산2동으로, 죽도산 쪽을 축산3동으로 분동하였고, 1988년 5월 1일 군조례(郡條例) 제972호로 동(洞)을 리(里)로 개칭할 때 축산리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자연환경]

축산리 북쪽은 봉화산[285.9m]과 높이 약 150~250m 산지가, 남쪽은 무등산[97.4m]에서 이어진 높이 약 150m 내외의 산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에는 와우산[65.4m], 죽도산[78.1m], 말미산[117m] 등이 독립 구릉지 형태로 솟아 있다. 축산리의 주요 하천은 서쪽 축산면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도곡리에서 서쪽으로 흘러 축산리를 V 자 형태로 곡류하며 동해로 유입한다. 축산천이 곡류하는 지점에는 범람원, 하안단구 등이 형성되었고, 하도 내에는 사력퇴적지, 포인트바(Point Bar)[곡류 하도의 곡류부 내측 외곽에 퇴적된 자갈 및 모래] 등의 하천 지형이 형성되었다. 동해로 유입되는 지점에서는 사주가 발달하고 있다.

[현황]

축산리의 2020년 말 면적은 5.28㎢이며, 2021년 5월 기준 총 719가구에 1,207명[남 570명, 여 637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는 동해, 서쪽으로는 도곡리상원리, 남쪽으로는 경정리, 북쪽으로는 영해면 사진리와 접해 있다. 축산리의 문화유적으로는 영양남씨(英陽南氏)와 영양김씨(英陽金氏)의 시조 유허비(南氏 始祖 遺墟碑)가 있고, 주요 교통로는 남동쪽 경정리에서 서쪽 축산면 소재지인 도곡리까지 축산천을 따라 국가지원지방도 제20호선이 지나고 있다. 북동쪽에는 1971년 12월에 국가 어항으로 지정된 축산항이 있다. 세평들과 구평들에서 벼농사를 하고 있으며, 사과·배·복숭아 등의 과실류와 참깨·들깨 등의 특용작물을 재배하며, 경제작물인 시금치·토마토·파·양파·고추 등을 점차 확대하는 추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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