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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685
한자 南承鄭
영어공식명칭 Nam Seungjeong
이칭/별칭 자산(子産),율은(栗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652년 - 남승정 직장(直長) 제수(除授)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경상도 영덕현]
묘소|단소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신양리 식율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본관 영양(英陽)
대표 관직|경력 직장(直長)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의병.

[개설]

남승정(南承鄭)[?~?]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1552~1627]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가계]

남승정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자방(子産), 호는 죽은(栗隱)이다. 남수(南須)의 6대손으로 아버지는 남국신(南菊臣), 어머니는 정세관(鄭世寬)의 딸 야성정씨(野城鄭氏), 할아버지는 소위장군(昭威將軍) 남유의(南有義), 증조할아버지는 전한(典翰)을 지낸 남세주(南世周)이며, 부인은 통덕랑(通德郞) 이순충(李純忠)의 딸 의성김씨(義城金氏)이다.

[활동 사항]

장흥효(張興孝) 문하(門下)에서 학문을 배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郭再祐) 휘하에서 활동하였고, 전란 후에는 군공으로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에 제수(除授)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도 도성으로 향하였으나, 이듬해 청나라와 화의를 맺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울분을 토하며 고향으로 돌아갔다. 만년에는 아우 남승필(南承弼)과 함께 고향 영덕현(盈德縣)에 체은정(棣隱亭)을 짓고 소요하였다. 1652년 직장(直長)에 제수되었다.

[묘소]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신양리 식율(植栗)에 묘소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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