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428
한자 金宗直 佔畢齋文集 - 彛尊錄 木版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예림서원로 128[후사포리 179]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497년연표보기 - 이존록 책판 제작
제작 시기/일시 1520년연표보기 - 점필재문집 책판 제작
제작 시기/일시 1709년 - 이존록 책판 중간
제작 시기/일시 1892년 - 이존록 책판 삼간
문화재 지정 일시 1979년연표보기 - 점필재문집 책판 및 이존록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75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8년 12월 20일연표보기 - 점필재문집 및 이존록 목판에서 김종직 점필재문집 및 이존록 목판으로 개칭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6월 29일 - 김종직 점필재문집 및 이존록 목판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장처 예림서원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예림서원로 128[후사포리 179]지도보기
원소재지 예림서원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예림서원로 128[후사포리 179]
성격 책판
재질 나무
크기(높이,길이,너비) 53.1㎝[가로]|20.1㎝[세로]|2.5㎝[폭]
소유자 예림서원|광주안씨 오휴당공파 문중
관리자 예림서원|광주안씨 오휴당공파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8호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예림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점필재 김종직의 조선 전기 문집 책판과 강호 김숙자의 사적을 기록한 조선 후기 책판.

[개설]

김종직 점필재문집 및 이존록 목판(金宗直佔畢齋文集및彛尊錄木版)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집 책판과 김종직의 아버지인 강호(江湖) 김숙자(金叔滋)[1389~1456]의 사적을 기록한 책판이다.

김종직 점필재문집 목판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점필재 김종직의 시문을 모아 문집으로 간행하기 위하여 제작한 목판이다. 처음 김종직의 문집은 김종직의 생질이자 제자인 강중진이 초고를 모아 김종직의 처남이자 제자인 매계 조위에게 편집을 부탁하여 1497년 원고를 완성하였다. 이후 성종이 보고자 하여 간행하지 못하고 있다가 후에 간행하였으나 배포에 이르지 못하고 무오사화에 소실하였다. 이에 강중진이 다시 글을 모아서 1520년(중종 12)에 선산군수의 협조로 목판으로 간행하게 되었다. 그 뒤로 여러 차려 수정과 보완을 거치면서 추가로 목판을 만들었다.

이존록 목판은 김종직이 아버지인 강호 김숙자의 가계와 사적 및 언행 등을 기록한 것이다. 조위가 서문을 쓰고, 강백진이 발문을 쓴 것에, 다시 김종직의 외할아버지인 박홍신과 첫 부인인 박씨의 행장을 덧붙여 1497년(연산군 3)에 책판으로 만들었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1709년과 1892년에 다시 간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종직 점필재문집 및 이존록 목판은 1979년 점필재문집 책판 및 이존록이라는 명칭으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75호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 12월 20일 김종직 점필재문집 및 이존록 목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예림서원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발문 1매의 경우 전체 크기는 가로 53.1㎝, 세로 20.1㎝, 폭 2.5㎝이고, 광곽은 사주쌍변으로 가로 36.2㎝, 세로 20.1㎝이다. 계선이 있고, 어미는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에 상하비선은 백구로 되어 있다. 반엽의 글자는 10행 20자이고 마구리가 있다.

[특징]

점필재문집 책판은 시집 23권, 문집 2권으로 모두 25권인데, 시집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뒤에 연보와 무오사적, 문인록 등을 부록으로 붙였는데 전체 191매이다. 또한 부록의 발문 1매가 광주안씨 오휴당공파 문중에 보관되어 있으므로 전체는 192매이다.

이존록 책판은 상하 2권을 1책으로 간행하였는데, 책판은 71매이다.

[의의와 평가]

강호 김숙자점필재 김종직은 조선 전기 영남 사림파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특히 김종직은 영남 사림파 인물 중에서 처음으로 벼슬에 나가 훗날 사림파가 정계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여 기반을 닦은 인물이다. 특히 김종직은 시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이 문제가 되어 무오사화의 빌미가 되었고, 그로 인하여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하는 불운을 겪게 된다. 김종직의 아버지인 김숙자는 야은 길재의 학통을 이어 김종직에게 전하는 가교로서의 역할을 한 인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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