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707
한자 高峰集
영어공식명칭 Gobongjib
이칭/별칭 고봉선생문집,고봉선생집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세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614년 - 『고봉집』 『양선생왕복서』 간행
간행 시기/일시 1629년연표보기 - 『고봉집』 원집 간행
간행 시기/일시 1630년 - 『고봉집』 『논사록』 간행
간행 시기/일시 1786년 - 『고봉집』 『양선생사칠이기왕복서』 간행
간행 시기/일시 1907년 - 『고봉집』 속집, 별집 부록 간행
간행 시기/일시 1907년 - 『고봉집』 14권 11책으로 합본 간행
소장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시문집
저자 기대승
편자 기효증|조찬한
간행자 한국동양철학회
권책 14권 11책
행자 10행 18자
규격 20.2⨯14.5㎝[반곽]
어미 상하향이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
권수제 고봉집(高峯集)
판심제 고봉집(高峯集)

[정의]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성리학자인 기대승의 시문집.

[저자]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자는 명언(明彦)이고, 호는 고봉(高峯)·존재(存齋), 본관은 행주(幸州)이다. 1527년(중종 22)에 전라도 광주 소고룡리(召古龍里) 송현동(松峴洞)[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서 부친 물재(勿齋) 기진(奇進)과 모친 진주강씨(晉州姜氏) 사이에서 5남 1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숙부인 복재(服齋) 기준(奇遵)이 기묘사화의 피화를 입어 세상을 떠나자, 부친 기진이 가족과 함께 광주에 정착한 이후 대대로 세거하였다. 7세 때부터 가학으로 여러 경서를 두루 읽으면서 학문을 익혔고, 과거에 급제하기 전까지 성리학에 심취하였다. 기대승은 30대 때 당대 유학자들의 스승 격이었던 김인후(金麟厚)·이항(李恒)·정지운(鄭之雲)·이황(李滉) 등과 성리학에 대해 상론할 만큼 학문적으로 큰 성취를 이루었다. 특히 1559년(명종 14)부터 1566년(명종 21)까지 8년 동안 서간을 통해 이황과 나눈 이른바 ‘사칠논변(四七論辯)’은 사단(四端)과 칠정(七情) 이론을 본격적으로 체계화시킴으로써 16세기 조선 성리학의 발전과 심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논쟁으로 평가된다. 1558년(명종 13)에 32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후,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를 시작으로 다양한 요직을 두루 거쳤다. 1572년(선조 5)에 대사간을 지내다가 병이 깊어져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였는데, 고향으로 오던 중에 전라도 태인(泰仁)에서 병이 악화되어 사돈인 김점(金坫)의 집에 머물렀다. 선조가 병증의 위중함을 듣고 어찰(御札)을 보내고 어의 오변(吳忭)을 내려 보냈으나, 어의가 도착하기 전에 병을 이기지 못하고 4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590년(선조 23)에 ‘문헌(文憲)’의 시호를 받았으며,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월봉서원(月峯書院)에 배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고봉집(高峰集)』은 원집(原集), 『논사록(論思錄)』, 『양선생왕복서(兩先生往復書)』, 『양선생사칠이기왕복서(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 속집(續集), 별집(別集) 부록 등 기대승이 저술한 것을 망라해서 14권 11책으로 간행한 것이다. 문집의 규모가 방대한 만큼 문헌에 따라 간행 시기가 다르다.

『양선생왕복서』의 초기 명칭은 『퇴계서척(退溪書尺)』으로, 이황이 별세한 후 기대승이 1558년(명종 13)부터 1567년(명종 22)까지 두 사람의 편지를 모아 2권으로 만든 것이다. 기대승이 별세한 후 장자 기효증(奇孝曾)이황의 손자 이안도(李安道)의 도움을 받아 『퇴계서척』에 누락되었던 1568년(선조 1)부터 1570년(선조 3)까지 3년간의 편지를 정리하였고, 조찬한이 영암군수로 있으면서 1614년(광해군 6)에 『양선생왕복서』라 표제하고 3권 3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원집은 기효증이 편집한 유고를 1629년(인조 7)에 그의 사위인 선산부사(善山府使) 조찬한(趙纘韓)이 선산에서 3권 3책의 목판본(木板本)으로 초간(初刊)하였다. 『논사록』은 선조의 명에 따라 기대승이 경연에서 진계(進啓)한 내용을 『기거주일록(起居注日錄)』에서 발췌하여 엮었는데, 이를 조찬한이 1630년(인조 8)에 2권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양선생사칠이기왕복서』는 6대손 기언정(奇彦鼎)이 1786년(정조 10)에 2권 1책으로 간행하였다. 이때 『논사록』 중간(重刊)도 함께 이루어졌으며, 2년 후인 1788년(정조 12)에는 『양선생왕복서』를 중간하였다. 속집과 별집 부록은 1907년(고종 44)에 간행되었다. 11대손 기동준(奇東準)이 기대승의 남은 시문 및 잡저와 후인들의 글을 엮어 속집 2권 2책, 별집 부록 2권 1책으로 편찬하였는데, 이때 앞에서 언급한 모든 저술들과 합편하여 목판본 14권 11책으로 중간하였다. 이후 1970년에 행주기씨(幸州奇氏) 종중에서 이전까지 간행된 문집들을 석인(石印)으로 삼간(三刊)하였다.

[형태/서지]

『고봉집』은 14권 11책으로 간행된 석판본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 20.2⨯14.5㎝, 계선이 있다. 반엽(半葉)의 행자수는 10행 18자, 어미는 상하향이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이다. 표제는 고봉선생문집(高峯先生文集), 판심제(版心題)와 권수제(卷首題)는 고봉집(高峯集)이다.

[구성/내용]

『고봉집』은 『양선생왕복서』 3권 3책, 원집 3권 3책, 『논사록』 2권 1책, 『양선생 사칠이기 왕복서』 2권 1책, 속집 2권 2책, 부록 2권 1책 등 총 14권 1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선생왕복서』는 3권 3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558년(명종 13)부터 1570년(선조 3)까지 13년 동안 기대승이황이 주고받은 114통의 편지를 날짜순으로 엮은 것이다. 일상의 안부에서부터 성리학에 대한 심오한 질의와 응답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 사이의 우의와 존경이 잘 드러나 있다. 원집은 3권 3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두에 장유(張維)의 서(序)와 장현광(張顯光)의 지(志)가 있고‚ 권말에 조찬한과 기영환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연보와 시(詩) 336수, 권2에 표(表) 10편, 전(箋) 1편, 상량문 1편, 주문(奏文) 2편, 서계수답(書契修答) 1편, 의(議) 2편, 설(說) 2편, 소(疏) 4편, 장(狀) 6편, 의비(擬批) 1편, 차(箚) 1편, 논(論) 3편, 기(記) 7편, 제문(祭文) 9편, 악장(樂章) 1편, 축문(祝文)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 권3은 비지(碑誌) 14편, 행장 3편, 서(書) 9편, 발(跋) 2편 등을 싣고 있다. 『논사록』은 2권 1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명종과 선조대에 기대승이 경연에서 강론한 내용을 모은 것이다. 『양선생 사칠이기 왕복서』는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양선생왕복서』 중에서 사단·칠정·이기 등과 관련된 글들만 따로 편집한 것이다. 기대승이황 사이의 철학적 논쟁을 명료하게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속집은 2권 2책, 별집 부록은 2권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속집의 권1에는 시 227제, 권2에는 서(書)·잡저·서(序)·발·제문·논·책(策) 등이 실려 있다. 별집 부록은 후인들이 지은 제문이나 만장, 기대승을 회고하는 글 등을 엮은 것이다.

[의의와 평가]

『고봉집』기대승이 이루어 놓은 철학·사상·문학 등을 집대성한 문집으로서, 기대승과 관련된 학술적 토대를 제공하는 중요한 문헌이다. 또한 16세기 조선 전기 성리학의 지평을 고찰하는 데도 큰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아울러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지역의 학문과 문예적 기풍을 탐색하는 데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참고문헌]
  • 기대승, 『국역 고봉전서』(한국고전번역원, 2007)
  • 규장각한국학연구원(https://kyu.snu.ac.kr)
  • 한국고전종합DB(https://db.itkc.or.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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