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동 상아마을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79
한자 飛鴉洞上鴉-堂山祭
이칭/별칭 비아동 상아산 당산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팽나무 -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동상아마을지도보기
성격 마을 신앙|동제
신당/신체 팽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동에 있었던 상아마을에서 지냈다고 전해지는 마을 제사.

[개설]

상아마을상아산마을이라고도 전해진다. 마을이 상아산(上鴉山) 구릉의 서남쪽에 있고, 마을의 형국이 '날으는 까마귀'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600년대 김해김씨(金海金氏) 김단경이 임진왜란을 피해 마을에 정착하면서 성촌되었다고 전해진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의 회산리와 신아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광주군 비아면에 편입하였다. 상아마을 앞에는 너른 평지가 있어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며 살아온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연원 및 변천]

상아마을에서 농악이 성행하던 당시, 마을의 공동 제사인 당산제를 지냈다고 하나 오래전에 사라져 그 유래를 알 수 없다. 1993년 광주직할시립민속박물관[지금의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의 광주 지역 당산제 조사 당시 오동권[당시 50세]의 제보로 당산제를 지냈다는 명맥만 겨우 전해지고 있다. 당산은 마을 앞에 있는 팽나무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비아동 상아마을 당산제는 마을에 농악이 성행하였을 당시에는 성대하게 치러졌다고 하나, 마을의 어르신들이 사망하면서 농악의 명맥이 끊어지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신당/신체의 형태]

마을 앞에 있는 팽나무를 신체(神體)로 모셨다고 전해진다.

[부대 행사]

당산제를 올린 뒤에는 농악이 성대하게 펼쳐졌다고 한다.

[현황]

비아동 상아마을 당산제는 오래전에 중단된 뒤 오늘날에는 제를 올리지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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