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999
한자 氷月堂
이칭/별칭 월봉서원(月峯書院)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곡길 133[광산동 452]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조한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41년연표보기 - 빙월당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79년 8월 3일연표보기 - 빙월당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9호 지정
현 소재지 월봉서원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곡길 133[광산동 452]지도보기
성격 강당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7칸
측면 칸수 3칸
문화재 지정 번호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9호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1941년에 세워진 월봉서원 강당.

[개설]

빙월당월봉서원의 강당(講堂)이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 월봉서원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전까지 불리던 이름이다. 월봉서원은 조선시대 대표 성리학자인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을 모셨다. 기대승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과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4개의 마음[사단(四端), 곧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과 7개의 감정[칠정(七情), 곧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이 어디에서 발현되는가에 대해서 치열하게 논쟁을 하였으며, 조선 중기 성리학의 주요 학설인 주기설(主氣說)을 세웠다.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곡길 133[광산동 452]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1578년(선조 11) 기대승 제자들과 지역 유학자들이 기대승이 성리학을 공부하던 낙암(樂庵)[현재 광산구 신룡동]에 망천사(望川祠)를 세웠다. 임진왜란으로 망천사가 불에 타자, 1598년(선조 31) 현재 광산구 산월동으로 이전하고, 1655년(효종 6년) '월봉(月峰)' 이름을 사액(賜額) 받았다. 1671년(현종 12) 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과 박순(朴淳)[1523~1589]을, 1673년(숙종 9) 김장생(金長生)[1548~1631]과 김집(金集)[1574~1656]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41년 기대승의 후손인 행주기씨 문중과 지역 유림들이 기대승 묘소가 있는 현재 광산구 광산동빙월당을 세웠다. 1978년 사우, 장판각, 내삼문, 외삼문를 건립하기 시작하여 1981년 현재 모습을 갖추었다. '빙월당'이란 이름은 정조가 기대승의 높은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내린 '빙심설월(氷心雪月)'에서 유래되었다.

[형태]

정면 7칸, 측면 3칸의 구조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정면에 '月峰書院(월봉서원)'의 편액이 있으며, 그 옆에 '氷月堂(빙월당)'과 '忠信堂(충신당)' 편액이 있다.

[현황]

빙월당 앞에는 외삼문인 망천문(望川門), 동재(東齋)인 명계재(明誡齋)와 서재(西齋)인 존성재(存省齋)가 있으며, 빙월당 좌우에는 장판각(藏板閣)이 각각 1동씩 총 2개가 있다. 장판각에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인 고봉문집목판(高峰文集木版) 474권을 비롯하여 여러 현판이 있다. 빙월당 뒤에는 내삼문인 정안문(靜安門)과 사당인 숭덕사(崇德詞)가 있다. 빙월당은 1979년 8월 3일에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빙월당은 광주 지역 대표 유학자인 기대승의 활약상과 이후 이 지역에서 기대승을 어떻게 모셨는지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서원이 다시 건립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참고문헌]
  • 『문화유적분포지도』-광주광역시(전남대학교박물관, 200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http://www.gjsgcc.or.kr)
  • 월봉서원(http://www.wolb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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