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천동 큰도랑실마을 당산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84
한자 道泉洞-堂山祭
이칭/별칭 도천동 큰도랑실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천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재개 시기/일시 1940년대 일제강점기 말 - 도천동 큰도랑실마을 당산제 중단
의례 장소 할머니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천동 큰도랑실마을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대보름날 낮
신당/신체 할머니당산[느티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천동 큰도랑실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대보름 날 낮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도천동 큰도랑실마을 당산제정월대보름날 낮에 큰도랑실마을의 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큰도랑실마을은 마을 앞에 큰 도랑이 있어 도랑실이라고 불렸다. 1600년대 무렵 광산김씨(光山金氏)가 나주에서 옮겨 왔고 순천박씨(順天朴氏)가 하남에서 이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비아인터체인지에서 하남공단으로 가는 도로의 우측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뒷쪽은 낮은 구릉이며, 마을의 서쪽은 하남공단으로 편입되었고, 마을 앞에는 약간의 논이 있는 마을이다. 당산제는 일제강점기 말에 일제가 굿물을 빼앗아가는 등 억압이 심해서 중단되어 현재는 진행되고 있지 않다.

[신당/신체의 형태]

큰도랑실마을의 당산은 할머니당산으로, 마을 앞에 있는 느티나무를 당산의 신체로 여겼다. 당산나무는 고목이 되어 1970년대 새마을사업을 하면서 벌목(伐木)하여 지금은 흔적이 없다.

[절차]

도천동 큰도랑실마을 당산제는 제를 지내기 일 주일 전에 마을 회의를 열어 화주를 비롯하여 헌관 1명, 집사 1명, 축관 1명 등 모두 4명의 제관(祭官)을 선출한다. 특히 화주는 깨끗하고 덕이 있는 사람으로 뽑는다. 화주로 선정되면 부정한 곳의 출입을 금한다. 제비(祭費)는 걸궁(乞窮)[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마을 집집을 돌아다니며 악기를 연주하거나 축원의 노래를 불러주는 일]을 쳐서 마련한 마을 자금으로 충당한다. 제물(祭物)은 돼지 한 마리를 잡고, 그밖에 삼실과, 마른 명태, 삼채 등을 준비한다. 제물의 준비는 화주집에서 하는데, 마을 사람 중에서 깨끗한 사람이 도와준다. 제물을 준비하면서 맛을 보거나 먹어보는 것은 금기시하므로 삼간다. 금줄은 화주가 결정된 다음 날 화주집 앞, 당산 주변 등에 쳐서 부정의 출입을 막는다. 당산제는 정월대보름날 낮 12시경에 모시는데, 제차(祭次)는 일반 가정의 제사와 유사하게 치렀다.

[축문]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의 축문을 읊었다고 하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부대 행사]

당산제가 모두 끝나면 당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모닥불을 피워 마을 사람들 모두 이곳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 먹고 저녁 늦게까지 놀았다. 큰도랑실마을에서는 당산제보다 걸궁을 치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고 한다. 이 걸궁을 통해 거둬들인 돈으로 굿물을 구입하고 나머지는 마을 자금으로 사용하였다.

[현황]

도천동 큰도랑실마을 당산제는 일제강점기 말에 일제가 굿물을 빼앗아가는 등 억압이 심해서 중단되어 현재는 진행되고 있지 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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