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225
한자 金德齡將軍衣服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서하로 48-25[용봉동 1004-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토|발굴 시기/일시 1974년 11월연표보기 - 김덕령장군 의복 출토
문화재 지정 일시 1980년 4월 1일연표보기 - 김덕령장군 의복 국가민속문화재 제111호 지정
현 소장처 광주역사민속박물관 - 광주광역시 북구 서하로 48-25[용봉동 1004-4]지도보기
출토|발견지 무등산 배재[梨峙]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지도보기
성격 의복
소유자 광주광역시
관리자 광주역사민속박물관[충장사에서 임시 보관 의뢰]
문화재 지정 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제111호

[정의]

광주광역시 무등산에 있던 김덕령장군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개설]

1974년 김덕령(金德齡)[1567~1596]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된 400년 전의 의복들이다. 출토된 유물은 철릭 2점과 장옷 1점, 과두 3점, 그리고 저고리 1점과 사폭바지 1점 등, 모두 8점이다.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형태]

김덕령장군 의복 중 무명 솜저고리는 흰색 무명에 솜을 둔 것으로 품은 상당히 크고, 화장은 짧다. 저고리 뒷길이는 69㎝, 앞길이는 72㎝이다. 모시철릭은 비교적 큰 편이다.

[특징]

출토된 의복에는 철릭의 여름용과 겨울용 2점, 두루마기와 같은 모습이지만 옷깃이 직선으로 곧아 이름 붙여진 직령포가 춘추용과 겨울용 4점, 그리고 저고리 1점과 바지 1점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철릭은 관복 가운데 하나로, 고려 중기부터 조선 말까지 전쟁 등 비상 때나 사냥, 사신으로 나갈 때 왕 이하 신하들이 입었던 옷이다. 주로 군사용으로 쓰였기 때문에 융복, 군복으로 통칭된다. 철릭은 상의와 하의를 따로 만들어 연결한 남성의 겉옷으로 하의인 치마에 잔주름을 넣어 허리선에서 상의와 연결한다. 조선 전기에는 상의와 하의의 길이 비율이 1:1 정도이다. 넓고 긴 소매는 중간에서 매듭단추로 연결하여 활을 쏜다든가 하는 경우에 소매 하단을 뗄 수 있게 하였다. 고려시대부터 입은 옷으로 철릭이라고도 한다.

김덕령의 묘에서 출토된 철릭은 임진왜란 당시 김덕령이 입었던 것으로 위급 시에 양팔을 모두 뗄 수 있게 만들었다. 여름옷은 흰모시로 만들었고, 겨울용은 두터운 솜을 넣고 누빈 것으로 길이도 여름용보다 더 길게 하여 방한용으로 입었다.

직령포는 흰 무명을 곱게 누빈 춘추용과 솜을 두텁게 두고 누빈 겨울용이 있다. 특히 명주 직령포는 삭아서 솜만 남았으나, 다른 옷들은 등솔기에서 소매 끝까지의 화장길이가 85㎝인 데 비하여 129㎝로 길다. 따라서 이것은 생존 시에 입었던 옷이 아니라 시신을 입히기 위하여 특별히 만든 수의로 보인다.

저고리는 겉은 굵은 면이고 속은 마로 안에 솜을 둔 것이고, 바지는 현재 솜만 남았으나 바지 형체가 뚜렷하게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김덕령장군 의복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을 지냈던 김덕령의 유물이라는 의미 외에도 임진왜란 당시의 남녀 평상복 유물로의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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