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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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경주최씨상계세보』에 의하면 강릉최씨 시조 최필달은 경주최씨 시조 최치원(崔致遠)의 후예로 전해지나 정확히 고증하기는 어렵다. 다만 최필달은 고려 초기에 경주최씨에서 분적(分籍)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최필달은 고려 초기 왕건을 도운 공으로 삼중대광삼한벽상개국찬화공신(三重大匡三韓壁上開國贊化功臣)이 되었으며, 영첨의좌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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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릉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강릉의 독립운동은 영동 지방에서의 의병 활동의 연계선상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을미의병 당시 민용호(閔龍鎬)에 의해 강릉에 설립된 관동구군도창의소(關東九郡都倡儀所)는 영동 지방 전체를 활동무대로 강릉의 대표적인 유림인 권인규(權仁圭)[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의 지원을 받으면서 전국 최대의 규모로 일제에 저항하였다. 이러한 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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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 당시 강릉 일원에서 전개된 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 등 주요 도시에서 비롯된 만세운동은 곧 전국적으로 파급되었다. 강릉에서는 초당리 청년 최돈옥(崔燉玉)이 탑골공원의 독립선언 식장에 참여하고 돌아온 즉시 창동회(昌動會)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대체로 강릉 지방의 3.1운동은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된 지 한 달 후인 4월 2일과 4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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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1563~1633]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던 사우. 정경세의 호를 따서 우복사(愚伏祠)라고 하였고, 일명 도동사(道東祠) 또는 퇴곡서원(退谷書院)이라고도 한다. 정경세는 1613년(광해군 5) 강릉대도호부사에 부임한 후 양몽재(養蒙齋)를 설치하고 강릉향교에 흥학비(興學碑)를 세우고 3년 재임 기간 동안 교화를 크게 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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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행정동. 조선 시대 광해군 때에 초당 허엽은 당파 싸움에 휘말려 화를 입을 때 산수가 수려하고 풍경이 좋은 현 안초당 연화지 자리인 강원도 강릉시 난설헌로193번길 1-16[초당동 475-3] 지역에 기거하였다. 여기서 조선 시대의 유명한 여류 시인 허난설헌과 최초의 한글 소설을 쓴 허균이 태어났다. 마을이 번성하자 허엽 선생의 호를 붙여 초당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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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7월 강릉시 초당동에서 발생한 좌우익 충돌 사건. 몽양 여운형이 주문진 교향리에서 동생 여운홍과 함께 학교를 세워 학생을 가르치고 있던 중, 취영정 계원인 초당 최용집이 여운형을 초당으로 모셔와 초당영어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2년 동안[1908~1910] 그의 민족의식 앙양, 영어, 창가, 체력 단련 등의 가르침은 초당리 주민들의 의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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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강원도 강릉시 초당리에 설립된 근대식 야학교. 국민계몽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 강릉의 유지 최돈철(崔燉徹)이 설립을 주도하였으며, 몽양(夢陽) 여운형이 교사로 초빙되어 영어와 근대 교과목을 지도하였다. 교과목은 국어, 한문, 일어, 지리, 역사, 산수, 영어, 체육이었으나, 영어에 중점을 두었다. 그것은 서구지향적인 개화 인물들의 영향과 미래지향적으로 교육시키고자 하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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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마을에 살았던 역사 인물로 먼저 김충각(金忠慤)[1578~1650]을 거론할 말하다. 김충각은 명주군왕 김주원의 후손으로, 참판 김덕장의 아들이다. 호는 초정(草亭)이고, 조선 선조 때 경포 초당마을에 살면서 벼슬은 사헌부감찰직장을 지냈다. 우복(愚伏) 정경세 선생과 평소 예학을 강론하였으며, 절의와 덕행이 매우 높았다. 생전에 경포호수 부근에 경호당(鏡湖堂)을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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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동은 상고시대에는 예(濊)의 속국으로 있었으며 기원전 127년에 창해군으로 편입되었고 한무제 때에는 임둔(臨屯)의 땅이었다. B.C. 30년에 동예의 땅으로 계승되어 고구려 시대에는 하슬라로, 신라시대에는 하서소경의 땅으로 고구려 때에는 동원경의 속현으로 이어져 조선시대에는 진관부에 속해 있었다. 1913년 군내면, 1916년 강릉면, 1931년 강릉읍에 속했다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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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릉 지방의 3·1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초순 강릉 읍내에서 시작되어 외곽 면 소재지로 확산되면서 5월까지 지속되었다. 강릉 3·1 독립 만세 운동은 강릉 보통학교 이명의(李明儀)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 비밀 결사 조직, 강릉 청년회 최선재(崔善在)·조대현(曺大鉉)·최선근(崔善根)·최돈옥(崔燉玉)·김진숙(金振淑)·최돈제(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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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릉 지방의 3·1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초순 강릉 읍내에서 시작되어 외곽 면 소재지로 확산되면서 5월까지 지속되었다. 강릉 3·1 독립 만세 운동은 강릉 보통학교 이명의(李明儀)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 비밀 결사 조직, 강릉 청년회 최선재(崔善在)·조대현(曺大鉉)·최선근(崔善根)·최돈옥(崔燉玉)·김진숙(金振淑)·최돈제(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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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릉 지방의 3·1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초순 강릉 읍내에서 시작되어 외곽 면 소재지로 확산되면서 5월까지 지속되었다. 강릉 3·1 독립 만세 운동은 강릉 보통학교 이명의(李明儀)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 비밀 결사 조직, 강릉 청년회 최선재(崔善在)·조대현(曺大鉉)·최선근(崔善根)·최돈옥(崔燉玉)·김진숙(金振淑)·최돈제(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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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릉 지방의 3·1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초순 강릉 읍내에서 시작되어 외곽 면 소재지로 확산되면서 5월까지 지속되었다. 강릉 3·1 독립 만세 운동은 강릉 보통학교 이명의(李明儀)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 비밀 결사 조직, 강릉 청년회 최선재(崔善在)·조대현(曺大鉉)·최선근(崔善根)·최돈옥(崔燉玉)·김진숙(金振淑)·최돈제(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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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릉 지방의 3·1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초순 강릉 읍내에서 시작되어 외곽 면 소재지로 확산되면서 5월까지 지속되었다. 강릉 3·1 독립 만세 운동은 강릉 보통학교 이명의(李明儀)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 비밀 결사 조직, 강릉 청년회 최선재(崔善在)·조대현(曺大鉉)·최선근(崔善根)·최돈옥(崔燉玉)·김진숙(金振淑)·최돈제(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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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직후 발생한 강릉 지역에서의 좌, 우익 간의 이념 갈등. -사상이 낳은 정치적 혼란- 해방 직후 강릉 지역 좌우익의 갈등-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왔으나 강릉 지역의 일본군은 계속 무장한 채로 주둔하고 있었다. 2주일이 지나도록 미군은 오지 않았고, 하루 바삐 일본군을 몰아내려는 의지가 강했던 시민들은 38선 이북 양양에 이미 주둔해 있던 소련군에게 일본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