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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747
한자 羽溪倉
영어음역 Ugyechang Granar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관부(전통 시대)
지역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대길

[정의]

조선시대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일대에 설치되어 있었던 창고.

[담당직무]

동창(東倉)·서창(西倉)·연곡창(連谷倉)·대화창(大和倉)과 더불어 조선 후기 영동지역의 세곡을 보관·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관련기록]

우계창(羽溪倉)의 설치시기와 관련해서는 『현종실록(顯宗實錄)』의 기록을 참고할 수 있다. 현종 13년의 기사에서 원양도의 양양·강릉·삼척·울진 등 네 고을에 산불이 거세게 번지면서 하루 사이에 타버린 민가가 1천 9백여 채나 되었고, 강릉 우계의 창고와 삼척의 군기고가 모조리 불에 타버렸으며, 화상을 입어 사망한 백성만도 65명이나 되었으며, 이에 따라 영서의 곡물 1천 석을 옮겨 진휼하였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또한 『숙종실록(肅宗實錄)』에서는 1707년(숙종 33)에 우의정 이이명(李頤命)강릉부 우계현에 창고를 설치할 것을 요청하고, 병조판서 이인엽(李寅燁)과 이조판서 이익수(李益壽), 훈련대장 이기하(李基夏)와 함께 그 편리함을 말하자, 임금이 본도에 물어보라 했음이 확인된다. 이를 통해 볼 때, 늦어도 17세기 중후반 이전에 우계창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800년(정조 24)에는 삼척·간성(杆城) 등의 고을에 암행겸위유어사(暗行兼慰諭御史)로 나갔던 권준(權晙)이 복명하면서 강릉의 영서에는 동창(東倉)·서창(西倉)·우계창(羽溪倉)·연곡창(連谷倉)·대화창(大和倉) 등 모두 다섯 개의 창고가 있고 피곡(皮穀)과 잡곡이 모두 26,040석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도 창고가 잘 관리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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