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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237
한자 具鳳瑞
영어공식명칭 Koo Bongseo
이칭/별칭 경휘(景輝),낙주(洛洲),경헌(景憲)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96년연표보기 - 구봉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24년 - 구봉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31년 - 구봉서 이조좌랑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38년 - 구봉서 전라도관찰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42년 - 구봉서 경상도관찰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44년 - 구봉서 평안도관찰사 부임
몰년 시기/일시 1644년연표보기 - 구봉서 사망
출생지 장단 - 북한 황해북도 장풍군
거주|이주지 한성 - 서울특별시
수학지 한성 - 서울특별시
부임|활동지 경상감영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포정동 21]지도보기
묘소|단소 구봉서 묘소 - 북한 황해북도 장풍군
성격 문관
성별 남성
본관 능성(綾城)
대표 관직 호조참의|경상도관찰사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문관.

[가계]

구봉서(具鳳瑞)[1596~1644]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경휘(景輝), 호는 낙주(洛洲)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조좌랑 구변(具抃)이고, 할아버지는 봉사 구광원(具光遠)이다. 아버지는 군수 구계(具棨)이며, 어머니는 이기(李耆)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부인은 오윤겸(吳允謙)의 딸 해주오씨(海州吳氏)이다.

[활동 사항]

구봉서는 1596년(선조 29) 장단(長湍)[현 북한 황해북도 장풍군]에서 태어나 한성[현 서울특별시]에서 자랐다. 석주(石洲) 권필(權韠)[1569~1612]에게 시(詩)를 배웠다. 1624년(인조 2)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을 거쳐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1631년 이조좌랑이 되었고, 이후 응교·승지를 거쳐 병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638년 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하였고, 1642년에는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여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구봉서는 당시 청나라의 관계가 악화되자 특별 파견되어 외교력을 발휘하였다. 당시 통역관 정명수(鄭命壽)가 청나라에 빌붙어 권력을 휘둘렀는데, 정명수의 세력을 믿고 횡포를 부리던 정명수의 사촌 동생을 체포하여 효수(梟首)하였다. 아울러 관서 지방의 오랜 병폐가 되었던 관향 화물(管餉貨物)의 문제를 해결하며 외교 질서를 확립하였다. 구봉서는 1644년(인조 2)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한 뒤 임지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구봉서의 묘소는 북한 황해북도 장풍군에 있다. 송시열(宋時烈)이 비명(碑銘)을 지었다.

[상훈과 추모]

구봉서경헌(景憲)이라는 시호로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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