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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0227
한자 大丘府邑誌[國立中央圖書館]
영어공식명칭 Daegu-bu Eupji
분야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류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832년 - 『대구부읍지』[국립중앙도서관] 편찬 추정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성격 읍지
권책 1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30.7×20.0㎝
권수제 대구부읍지

[정의]

조선 후기 간행된 경상도 대구도호부의 읍지.

[편찬/간행 경위]

『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는 순조(純祖) 연간(年間)[재위 1800~1834]에 1책으로 간행된 대구도호부의 읍지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구부읍지』경상감영에서 편찬한 도지(道誌)인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 수록된 「대구부읍지」와 거의 유사하다.

『대구부읍지』는 서문과 발문이 없어 정확한 편찬 시기와 간행 경위는 알 수 없지만, 호구(戶口)·전부(田賦) 항목은 1831년을 기준으로 하였고, 관적(官蹟)[환적(宦蹟)의 오기] 항목의 기록은 1832년을 넘지 않기 때문에 1832년경 대구도호부에서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서지]

『대구부읍지』의 가장 앞에는 ‘대구지도’ 채색본이 첨부되어 있고, 내제는 ‘대구부읍지’이다. 읍지의 크기는 세로 30.7㎝, 가로 20.0㎝이며, 행자는 10행 20자이다.

[구성/내용]

『대구부읍지』는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山川),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군액(軍額), 성지(城池), 임수(林藪), 창고(倉庫), 학교(學校), 관방(關防), 진보(鎭堡), 봉수(烽燧), 단묘(壇廟), 총묘(塚墓), 불우(佛宇), 공해(公廨), 누정(樓亭), 도로(道路), 교량(橋梁),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관적[영선생(營先生), 읍선생(邑先生)], 과거(科擧), 인물(人物), 제영(題詠), 비판(碑版)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관방, 진보, 도서, 목장은 항목이 있지만 해당사항이 없어 ‘무(無)’라고 기록되어 있다.

군명 조에는 경상감영의 설치 연혁을 수록하였고, 산천 조에는 연구산(連龜山)·침산(砧山)·팔공산(八公山)·팔조령(八助嶺)·금호(琴湖) 등의 위치가 실려 있다. 풍속 조에는 “사대부는 순수하고 질박함을 숭상하며, 백성들은 농사와 길쌈을 생업으로 삼는다”라고 적혀 있다. 방리 조에는 동상(東上)·서상(西上)·달서(達西)·성서(城西) 등 34개 면의 부(府)에서의 거리와 소속 동리를 부기하였다.

호구 조에는 1831년 신묘식 원호 1만 3194호, 인구 5만 6962명, 남자 2만 4794명, 여자 3만 2168명을 수록하였다. 전부 조에는 양안에 기록된 밭 7,807결 23부, 논 4,976결 54부 4속 등 토지 결수와 전세·대동·균세·요역으로 구분하여 조세 정보를 기록하였다. 성지 조에는 달성(達城)과 부성(府城)의 규모와 시설, 남문루 상량문 등을 실었다. 임수조에는 신천수(新川藪)·칠성암수(七星巖藪)의 위치와 유래 등을 설명하였다.

학교 조에는 향교·연경서원(硏經書院)·표충사(表忠祠)·낙빈서원(洛濱書院), 불우 조에는 동화사(桐華寺)·용연사(龍淵寺)·용천사(湧泉寺)·운흥사(雲興寺)·부인사(夫仁寺), 누정 조에는 하목당(霞鶩堂)·전귀당(全歸堂)·농연정(聾淵亭) 등이 실려 있다.

제언 조에는 송라제(松羅堤), 대동제(大同堤), 산대제(山大堤), 대불상제(大佛上堤) 등 저수지 94개소와 지인보(知仁洑), 신보(新洑), 개보(介洑), 선하보(船下洑) 등 방보(防洑) 87개소를 기록하였다. 장시 조에는 읍장[2·7일], 화원장[3·8일], 하빈장[5·10일], 풍각장[1·6일] 등이 있다.

환적 조는 영선생과 읍선생으로 구분하여 역대 부임자의 이름 및 이부임 시기를 기록하였는데, 1832년 이임된 관찰사 박기수(朴岐壽)와 1831년 떠난 판관 조형복(趙亨復)까지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부읍지』는 1832년경 편찬된 『경상도읍지』「대구부읍지」와 내용이 거의 유사한 읍지로, 19세기 전반 대구도호부의 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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