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016
한자 社稷壇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재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406년 - 각 고을에 사직단 설치
문화재 지정 일시 2006년 4월 20일 - 노변동사직단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6월 29일 - 노변동사직단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노변동사직단 - 대구광역시 수성구 노변동 407-4 일대지도보기
현 소재지 서구 사직단 - 대구광역시 서구 평리4동 1314번지 일대지도보기
성격 제단
문화재 지정 번호 대구광역시 기념물

[정의]

대구 지역에서 사직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

[개설]

조선시대에는 국가 사직단 외에도 각 고을마다 사직단을 조성하였다. 토지 신인 사(社)는 다스리는 영토와 관련되고, 오곡(五穀)을 주관하는 신인 직(稷)은 백성의 삶과 관계되었다. ‘종묘사직이 위태롭다’는 말이 있듯이 사직은 곧 국가 그 자체로 인식되었다.

[건립 경위]

1406년(태종 6) 6월 각 고을의 관아 서쪽에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위치]

1760년 당시 대구부는 관아 서쪽 7리 평산(坪山), 경산현은 서쪽 7리, 현풍현은 서쪽 2리에 사직단이 있었다. 칠곡부는 당시 관아가 가산산성에 있었는데 관아 북쪽 1리에 사직단이 있었지만, 1819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현재의 대구 북구 칠곡 지역으로 관아를 옮기면서 사직단은 관아 북쪽 나박암(羅箔巖)[나박산]에 설치하였다.

[형태]

국가 사직단은 사단과 직단 2개의 단을 두었지만, 각 고을의 사직단은 규모가 작고, 단도 1개이다.

[현황]

대구광역시에는 평리동과 현풍, 경산 등 세 곳에 사직단이 있다. 그중 경산현 사직단대구광역시 수성구 노변동에 있어 ‘노변동사직단’으로 불리며, 매우 양호한 상태로 발굴되었고, 원형을 복원하였다. 이보다 앞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에도 사직단을 복원하였으나 원래의 위치는 아니다. 원래의 위치에는 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대구광역시 서구 평리동 1314번지 일대에 있는 사직단서구 사직단으로 불린다. 노변동사직단은 2006년 4월 20일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었으나,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각 고을의 사직단은 읍치 경관을 구성하는 필수 경관 요소였다. 전통 사상과 의례, 국가 관념 등을 내포한 경관으로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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