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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병원 노사분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247
한자 -病院 勞使粉糾
이칭/별칭 파타마병원 노동조합 노사분규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노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91년 5월 4일연표보기 - 파티마병원 노사분규 발생
종결 시기/일시 1991년 6월 10일연표보기 - 파티마병원 노사분규 종결
발생|시작 장소 대구 파티마병원 - 대구광역시 동구 아양로 99[신암동 576-31]지도보기
성격 노동운동|노동쟁의
관련 인물/단체 이미애|파티마병원 노동조합

[정의]

1991년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파티마병원에서 있었던 노사 간 임금 교섭 결렬로 발생한 노사분규.

[개설]

파티마병원 노사분규가 발생한 이유는 노사 간 임금 교섭에 따른 기본금의 차이이다. 노조 측은 기본급 4만 9461원 인상을 주장한 반면 병원 측은 기본급 5% 인상[1만~2만 원]안으로 맞서 임금협상이 결렬되면서 파티마병원 노동조합 측이 1991년 5월 4일 병원노련 산하 동산병원의 노조와 연대하여 쟁의 발생을 신고하였다.

[역사적 배경]

1987년 6·29선언 이후 사회 전반에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억눌려 왔던 근로자들의 욕구불만이 분출하면서 노사분규의 빈도나 양상, 규모 면에서 과격하고 크게 일어났다. 또 1980년대 말을 거치면서 단체교섭과 임금인상 중심으로 분규가 일어났으나 점차 쟁점이 다양화하여 경영참가, 복지 문제 등으로 확산하였으며, 분규 유형도 집단 농성. 작업거부로 나타났다.

[경과]

1991년 5월 4일에 1991년도 임금인상 및 주 44시간 노동시간 확보를 위한 협상이 결렬되어 노동조합에서 쟁의 발생을 신고하였다. 1991년 5월 6일에 병원 측에서 노조 간부 4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자 5월 23일 노조 측은 파업에 돌입하였으며 노조원 130명이 참석하였다. 1991년 6월 3일에 검찰은 노조 간부 4명에게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하였고, 파업 14일째인 6월 5일에 농성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여 파업 농성 노동자 40여 명을 강제 연행한 후 6월 6일에 구속영장이 발부된 4명의 조합원을 훈방 조치하였다. 그러자 새 집행부를 구성한 뒤 조합을 지키고 희생을 줄이자는 조합원의 의견을 받아들여 6월 10일 오전 7시에 1층 로비에서 조합원 40명이 참석한 가운데 파업을 해산하였다.

[결과]

노사분규에서 병원 측은 1991년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3일간에 걸쳐 조합원 33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여 해고 5명, 출근 정지 9명, 견책 11명, 경고 2명으로 징계를 결정하였다. 노조 측에서는 해고자 복직 투쟁을 전개하면서 1991년 9월 13일에 제2대 임원 선출을 위한 조합원 투표를 실시하여, 이미자 위원장의 새 집행부를 구성하였다.

[의의와 평가]

그동안 경제성장을 위하여 효율성을 강조한 나머지 빈부격차로 인하여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 문제를 소홀히 다룬 결과 노사분규로 분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노사분규를 통하여 노사정 세 노사관계의 주체가 대화를 통하여 사회적 갈등 문제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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