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868
한자 李喜之 妻 延日 鄭氏
영어공식명칭 Lee Huiji’s wife Yeonil Jeongssi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726년 - 이희지 연일 정씨 열녀로 정려
묘소|단소 이희지 연일 정씨 묘소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입석리
성격 열녀
성별 여성
본관 연일(延日)

[정의]

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열녀.

[가계]

연일 정씨(延日 鄭氏)[?~?]는 동지중추부사 정만해(鄭萬楷)의 딸이다. 판서 이사명(李師命)의 아들 이희지(李喜之)[1681~1722]와 혼인하여 부여의 전주 이씨(全州 李氏) 가문으로 출가하였다.

[활동 사항]

이희지 처 연일 정씨의 시아버지 이사명은 1689년(숙종 15) 장희빈의 소생 정호세자(定號世子)[훗날 경종(景宗)]의 세자 책봉으로 남인이 재집권하는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났을 때 참화를 당하였다. 이후 1722년(경종 2)에 세자 시절의 경종에게 독약을 먹여 시해하려 하였다는 목호룡(睦虎龍)의 거짓 고변으로 남편 이희지마저 투옥되었다가 장형을 받고 사망하였다.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들은 연일 정씨의 시어머니 임천 조씨(林川 趙氏)[가림 조씨]는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대재각(大哉閣)에 올라 탄식하며 강물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이때 연일 정씨도 시어머니를 뒤따라 죽으려다가, 자신이 죽으면 시어머니와 남편의 장례를 치를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시신을 수습하여 두 사람의 장례를 치렀다. 연일 정씨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장례를 치른 뒤에 다시 대재각에 올라 손가락을 베어 혈서로 자결시 15구를 기둥에다 쓰고 강물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묘소]

이희지 처 연일 정씨의 묘소는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칠산리에 있다. 남편 이희지와의 합장묘이다.

[상훈과 추모]

이희지 처 연일 정씨는 1726년(영조 2) 열녀 명정을 하사받았다. 연일 정씨의 열녀 정려는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로 142[진변리 38-1]에 있으며, 2012년 8월 28일 ‘이사명의 처 가림조씨 및 이희지의 처 연일정씨 정려’라는 명칭으로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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