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862
한자 保寧金剛庵石佛-碑片
이칭/별칭 보령 금강암 석불 및 비편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물/불상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보령호로 1139-102[용수리 572-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성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412년연표보기 - 보령금강암석불및비편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00년 9월 20일연표보기 - 보령금강암석불및비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지정
현 소장처 금강암 -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보령호로 1139-102[용수리 572-1]지도보기
현 소장처 보령박물관 - 충청남도 보령시 대흥로 63[대천동 340-2]지도보기
성격 불상|비편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180㎝[불상 높이]|43.5㎝[대좌 높이]
소유자 금강암
관리자 금강암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금강암에 있는 조선 전기의 불상과 비편.

[개설]

보령금강암석불및비편(保寧金剛庵石佛및碑片)은 비편의 명문(銘文)을 통해 1412년(태종 12)에 조성된 조선 전기의 불상과 비편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석불은 금강암(金剛庵)에 보관되어 있고, 비편은 보령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2000년 9월 2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형태]

보령금강암석불및비편은 1973년 조사되어 학계에 보고되었다. 비편은 하단 부분이 파손되어 있으나, 금강암 중건 사실과 조성 연도가 남아 있어 조선 전기 석조불상과 석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비편의 전면은 ‘영암비구창 금강암비명(玲嵒比丘創 金剛庵碑銘)’으로 시작한다. 청석에 16줄, 241자가 남아 있으며 비의 내용은 금강암을 창건한 내역과 불상을 조성한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다.

석불의 전체 높이는 180㎝, 대좌의 높이는 43.5㎝이다. 대좌는 중대석과 하대석이 한 돌로 조성되었으며, 중대석과 하대석 위에 상대석이 올려져 있다. 하대석과 상대석에는 단판(單瓣)의 연화문(蓮華文)이 조식(彫飾)되어 있다. 대좌는 전체적으로 라마식 티벳 불상 대좌와 비슷하며 조선 시대 승탑의 대좌와도 유사하다.

대좌 위에는 좌상의 석불이 안치되어 있으며, 석불은 원형 보개(寶蓋)를 착용하고 있다. 보개 상면에 중앙에서 퍼져나온 6개의 합각선이 마루 형태로 돌출되어 있다. 보개의 정상부는 원형으로 솟아나 있고 보개 위에 별석의 보주(寶珠)가 있다. 보개를 착용하고 있는 머리는 소발(素髮)[민머리]이며, 소발과 이마의 경계선이 일자로 선명하게 조각되었다. 머리 뒤쪽에 보개와 경계를 이루는 부분이 수평으로 깎여 있어, 석불은 원래부터 보개를 착용하고 있었던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이마 중앙에는 백호(白毫)가 있다. 가늘게 뜬 눈은 얼굴의 측면까지 길게 표현되었다. 코는 짧으며 콧구멍이 살짝 드러나 있다. 입은 얼굴에 비해 작으며 뺨이 도톰하게 솟아 있어 코와 입술이 얼굴 중앙에 모여 있는 인상을 준다. 어깨까지 내려온 귀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I자 형태이며 두툼하게 만들었다.

상호(相好)의 외곽은 타원형이며 실제 인물을 보는 듯한 사실적인 얼굴 표정을 취하고 있다. 목 부분에 도드라진 한 줄의 선각이 있다. 두터운 느낌을 주는 변형 통견(通肩) 형태의 법의(法衣)를 착용하고 있으며, 가슴 아랫부분까지 넓게 드러나 있다. 옷 주름은 전체적으로 단순하게 표현하였다. 수인(手印)은 아랫배 부근에 양손을 펼친 채 손바닥이 위로 가게 하여 포개었고, 손바닥 위에 연꽃봉오리를 받쳐서 들고 있다.

[특징]

비편의 명문에 의하면 금강암은 태종의 후비였던 궁주 권씨(宮主 權氏)의 소원을 빌기 위한 원당(願堂)으로 창건되었다. 사찰은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제자인 영암(影庵) 스님이 건립하였으며, 궁주 권씨의 아버지인 영가군(永嘉君) 권홍(權弘)과 권씨의 딸인 옹주 이씨(翁主 李氏)가 후원하였다. 비문의 마지막 부분에 ‘영락십년임진(永樂十年壬辰)’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석불과 비석이 1412년(태종 12)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불상이 들고 있는 연꽃봉오리는 용화(龍華)로 여겨지고 있으며 고려 시대 불상에서 다수 확인된다. 용화를 들고 있는 고려 시대 불상은 미륵상으로 여겨진다. 미륵상이 연꽃봉오리를 들고 있는 용화인(龍華印)을 결하고 있는 것은 도솔천에서 하생하여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개최되는 용화삼회(龍華三會)의 설법을 ‘용화’라는 꽃을 통해서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조선 전기에 조성된 보령금강암석불은 용화인을 취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미륵불상으로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성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으며, 불상 조성의 후원 세력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 전기 불교사와 불교 조각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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