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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527
한자 古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강종원

[정의]

기원 전후부터 7세기 중후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까지의 충청남도 보령시의 역사.

[개설]

한국의 고대는 고구려와 삼한의 여러 소국들을 병합한 백제, 신라, 가야 등이 형성되어 발전한 시기이다. 원삼국 시대 보령 지역에는 만로국(萬盧國), 또는 소위건국(素謂乾國)이 있었을 것으로 비정(比定)된다. 이후 한강 유역에서 성장한 백제가 마한의 소국들을 병합하면서 백제의 영역으로 편제되었다. 마한의 병합 시기는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에는 온조왕(溫祚王)[재위: 기원전 18~기원후 28] 대로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는 3세기경부터 근초고왕(近肖古王)[재위: 346~375] 대까지 점진적으로 영역화가 진행되었다. 보령 지역이 백제의 영역으로 편제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홍성군 결성의 신금성에서 4세기 중엽에 해당되는 백제 토기를 비롯해 중국제 전문 도기편 등이 확인된 점으로 볼 때 거의 비슷한 시기로 파악된다.

[행정 구역]

보령 지역이 백제의 영역으로 편제된 이후 중앙의 통치 체제에 편제되었지만 한성기(漢城期)에는 재지(在地) 세력을 통한 간접 지배가 이루어졌다. 475년 웅진천도 이후 보령 지역의 지리적 중요성이 높아졌으며, 중앙의 직접적인 지배력이 미쳤다. 웅진기(熊津期)에는 지방 통치 제도로 담로제가 시행되었으나 보령 지역이 담로로 편제되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그렇지만 5세기 후반의 석실분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중앙 세력의 침투 사실은 확인된다.

기록을 통해 보령 지역이 중앙의 직접적인 지배 체제에 편제된 것은 사비기(泗沘期)이다. 이때 지방 통치 체제로는 방군성제(方郡城制)가 시행되었는데, 성(城)은 현(縣)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된다. 보령 지역은 설림군[서천]의 영현(領縣)인 사포현결기군[결성]의 영현인 신촌현으로 편제되었다. 사포현은 설림군의 영현 가운데 하나였으며, 보령시 남포면·웅천읍 일대에 설치되었다. 중심 치소(治所)는 웅천읍 수부리 수안마을로 비정하는 견해가 있다. 신촌현결기군의 영현 가운데 하나였다. 중심지는 주포면 보령리 구성재 부근으로 추정되는데, 이곳에서 ‘신촌(新村)’ 이라는 이름의 기와편이 확인되었다. 신촌은 사촌(沙村)으로도 불렸다.

성(城)[현(縣)]은 지방 지배의 거점으로 독자적인 지배 영역을 가지며, 방이나 군에 영속되어 있었다. 성에는 중앙에서 지방관이 파견되었으며, 성주(城主) 또는 도사(道使)라고 불렸다. 백제에는 200여 개의 성이 있었다.

그리고 사포현의 중심에서 동북쪽으로 성주사(聖住寺)의 전신인 오합사(烏合寺)라는 사찰이 있었다. 이 사찰은 법왕(法王)[재위: 599~600]이 왕자 시절에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백제 말기인 655년(의자왕 15)에는 붉은 말이 오함사에 들어가 울면서 법당을 돌다가 며칠 만에 죽었다고 하여, 백제의 멸망을 예고하는 이변 현상이 일어났다. 「숭암산성주사사적(崇嚴山聖住寺事跡)」에는 오합사(烏合寺)로 기록되어 있는데, 같은 사찰로 이해된다.

나당군이 백제를 멸한 후 663년에 백제 고지를 1도독부 7주 51현으로 편제하였는데, 이때 보령 지역은 도독부의 직할 영역으로 산곤현(散昆縣)과 매라현(邁羅縣)이 두어졌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중 신촌현 지역은 산곤현으로 비정된다. 통일 신라기인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대 신읍현(新邑縣)으로 개칭되었으며, 고려 초에 보령현(保寧縣)으로 변경되었다.

[유적]

원삼국 시대 유적으로는 고분 유적인 관창리 유적, 의례 공간으로 비정되는 환호(環濠) 시설이 확인된 명천동 유적이 있다. 특히 명천동 유적에서는 중국제 동경과 구슬 등이 출토되어 의례 유적으로 파악되었다. 백제 유적으로는 취락 유적인 관산리 선사유적, 고분 유적인 명천동 유적, 주포면 연지리 고분군, 남포면 소송리 유적, 웅천읍 구룡리 고분, 주포면 보령리 고분군, 청라면 장현리 유적, 청라면 의평리 가느실골 고분군 등이 있다. 그리고 이들 고분 유적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유물과 고분의 구조를 통해 보령 지역에 대한 백제 중앙 권력의 침투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산성은 주포면 마강리고남산성[봉당고성], 연지리아현산성, 주포면진당산성, 향천리산성, 염포면 제석리의 대봉산성과 달산리산성, 웅천읍수부리산성, 대천리산성, 성동리산성, 주산면의 창암리산성, 황율리산성, 삼곡리산성 등이 확인되었다. 다만 이들 산성은 정식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축조 시기가 불분명하지만 지표 조사 등으로 확인된 유물 등을 통해 볼 때 백제 시대로 비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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