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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007
한자 先史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선사/선사
집필자 손준호

[정의]

구석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는 충청남도 보령시의 역사와 문화.

[개설]

충청남도 보령 지역은 한반도의 중서부에 자리하며 인간이 거주하기에 적당한 자연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바다에 접하고 있어 풍부한 해양 자원을 이용할 수 있으며, 교역에서의 관문 역할을 통하여 특수한 지위의 획득도 가능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이점을 바탕으로 선사 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 일대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아 왔다.

[구석기 시대]

관산리 유적의 발굴 조사 과정에서 뗀석기가 수습되어 구석기 시대 유물의 존재가 확인된 이후, 명천동 유적에서 유물 포함층 2개 지점이 발굴 조사되어 보령 지역 인간 점유의 시작을 좀 더 분명하게 밝힐 수 있었다. 유적의 시기는 중기 구석기 시대로 추정되며, 유물은 주먹도끼·찌르개·찍개·긁개·여러면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신석기 시대]

1950년대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의 지표 조사를 통해서 조개더미가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나, 정식으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해당 시기의 유구와 유물이 확인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발굴 조사된 조개더미는 송학리 유적이 유일한데, 3개 지점 4곳에 분포하며 각각 3~12개의 층으로 구분된다. 집자리는 관창리 유적옷구치 유적에서 확인되었으며, 소송리 유적돌리망골 유적에서는 소형 구덩이가 조사되었다. 유물은 물고기뼈무늬, 점줄무늬, 빗금무늬, 마름모무늬 등이 시문된 토기류, 뒤지개, 갈돌, 갈판 등의 석기류 그리고 조개를 가공한 팔찌 등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구와 유물의 양상을 볼 때 보령 지역에서 조사된 신석기 시대의 유적은 대부분 후기에 해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청동기 시대]

청동기 시대에 보령 지역은 인간의 점유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대형 마을 유적의 존재나 다수의 고인돌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전기와 후기의 유적이 모두 조사되었으며, 특히 후기에 해당하는 유적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전기 유적은 대부분이 주거 중심 마을로, 관산리, 구룡리, 주교리, 명천동, 옥서리, 두룡리, 창암리·황율리 등지에서 확인되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 또는 장방형이 대다수이며, 내부 시설로는 무시설식이나 구덩식 화덕 자리가 1개 또는 복수로 설치되어 있다. 일부 집자리에서는 돌두름식 화덕 자리도 발견되었다. 유물은 구멍무늬토기, 골아가리토기, 짧은빗금무늬토기와 이러한 무늬가 조합된 토기류, 턱자루식 간돌검, 턱슴베식 간돌살촉, 삼각오목간돌살촉, 물고기모양돌칼, 배모양돌칼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구와 유물의 양상을 볼 때 보령 지역 청동기 시대 전기 유적은 대부분 역삼동 유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청동기 시대 후기에 유적의 수가 급증하는데, 관창리, 죽청리, 진죽리, 옷구치, 소송리, 평라리, 연지리 등지에서 확인된다. 그리고 전기 유적 가운데 명천동, 구룡리, 창암리·황율리, 주교리, 관산리에서도 후기의 유구가 조사되어, 비교적 오랜 기간 마을이 점유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집자리는 대부분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를 설치한 송국리형 집자리이다. 집자리 이외에도 무덤, 소형 구덩이, 가마터, 굴립주 건물지, 논 등 유구의 종류와 수량이 전기에 비해 크게 증가한다. 유물은 송국리식 토기와 통자루식 간돌검, 통슴베식 간돌살촉, 삼각모양돌칼, 홈자귀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두드림무늬가 시문된 토기류인데, 주로 서해안 지역의 유적에서만 확인되어 지역성을 나타내는 자료로 삼을 수 있다.

무덤이 다수 축조되는 것도 이 지역의 특징 중 하나이다. 고인돌이 발굴 조사된 유적으로는 양기리, 화산동, 노천리, 달산리, 관창리, 평라리, 소송리, 죽청리, 주교리 등이 있으며, 송국리문화의 무덤인 돌널무덤, 돌뚜껑 움무덤, 독널무덤이 확인된 유적으로는 명천동, 평라리, 관창리, 관당리, 관산리, 노천리, 창암리·황율리, 의평리 등이 있다. 고인돌의 형식은 탁자식, 바둑판식, 덮개식이 모두 있으며, 출토된 유물은 거의 없지만 송국리문화 무덤과 함께 분포하는 평라리 유적, 관창리 유적, 노천리 유적의 사례를 볼 때 주로 청동기 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 조사된 고인돌 이외에도 지표 조사 등을 통해 다수가 보고되는 것으로 볼 때, 보령 지역은 충청 지역 고인돌의 최대 밀집지라고 할 수 있다.

[초기철기 시대]

선사 시대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초기 철기 시대 유적으로는 교성리 고지성 마을이 대표적이다. 해발 188m의 산 정상부에 있는데, 유이민과 토착민 사이의 갈등 관계를 반영한 입지 선정이라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평면 방형 집자리에 화덕 자리가 대부분 벽 쪽으로 치우쳐 설치된 것이 구조상의 가장 큰 특징이다. 비슷한 형태와 구조의 집자리는 관창리 유적명천동 유적에서도 관찰된다. 유물은 둥근덧띠토기, 쇠뿔손잡이, 굽다리토기 등의 토기류와 홈자귀, 조갯날도끼, 삼각간돌살촉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기존의 청동기 시대에 확인되지 않던 새로운 유구와 유물의 양상은 외부로부터 유입된 문화의 초기적 모습으로 추정된다.

같은 시기의 무덤으로는 관창리 유적관산리 유적의 돌덧널무덤을 들 수 있다. 유물은 둥근덧띠토기, 검은간토기, 삼각간돌살촉, 대롱옥, 청동 거울 등이 부장(副葬)되어 있다. 이 밖에도 관창리 유적과 진죽리 유적의 송국리형 집자리 내부에서 초기 철기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하여 토착민과 유이민의 교류 관계를 상정하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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