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2153 |
---|---|
한자 | 朝鮮國 端宗大王 莊陵陵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영흥리 1090-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용건 |
건립 시기/일시 | 1733년 -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능비 건립 |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441년 7월 23일 - 단종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457년 10월 24일 - 단종 사망 |
현 소재지 | 장릉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영흥리 1090-1] |
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단종|윤양래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56㎝[높이]|60㎝[너비]|31㎝[두께] |
[정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장릉 경내에 있는 단종의 생애를 기록한 조선 후기의 비.
[건립 경위]
『영조실록』에 의하면 1733년(영조 9) 6월 19일 영조가 소대(召對)를 행하였는데, 소대 자리에서 영월부사 윤양래(尹陽來)가 장릉에 단종의 비석을 세울 것을 건의하였고, 7월 단종대왕의 능비와 비각을 건립하라는 어명이 내려진다.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능비는 1733년 건립되었다.
[위치]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능비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090-1번지에 있다. 장릉 경내의 단종비각 안에 있다.
[형태]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능비는 개석[뚜껑돌]과 비신[비석의 중심을 이루는 비문을 새긴 돌], 대좌[비석을 받치는 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좌 위에 비신이 있으며 비석은 주칠이 되어 있다. 개석은 팔작지붕 모양이다. 비신은 높이 156㎝, 너비 60㎝, 두께 31㎝이다.
[금석문]
『승정원일기』 1734년(영조 10) 4월 16일 기록에 의하면 비석 앞면은 예조 참의 이성룡(李聖龍)이 전서체로, 뒷면은 서평군(西平君) 이요(李橈)가 해서체로 썼다. 앞면은 ‘조선국 단종대왕장릉’이라고 새겨져 있다. 뒷면은 ‘단종대왕의 이름은 이홍위(李弘暐)로 문종대왕의 적사이다. 어머니인 왕비 현덕왕후가 정통[명나라 명종 때의 연호] 신유년[1441년(세종 23)] 7월 23일 왕을 낳으셨다. 무진년[1448년(세종 30)] 왕세손에 봉해지고 경대[명나라 대종 때의 연호] 경오년[1450년, 문종 즉위]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임신년[1452년(문종 2)] 5월 문종께서 승하하시자, 왕세자로서 왕위에 오르셨다. 을해년[1445년, 세조 즉위] 왕을 높여 상왕으로 삼으며, 공의온문(恭懿溫文)이라는 존호를 올렸다. 천순[명나라 영종 때의 연호] 정축년[1457년(세조 3)] 왕께서 강원도 영월군에 계셨는데, 그해 10월 24일에 훙서하셨다. 춘추는 열일곱이셨다. 영월군 북쪽 신좌을향(辛坐乙向)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숙종대왕 24년(1698) 무인에 ‘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敦孝大王)’이라는 시호를 추상하고 묘호는 ‘단종(端宗)’으로 정하였으며 능호는 ‘장(莊)’이라 하고 영녕전에 부묘하였다. 금상[영조] 9년 계축[1733년] 능침에 비석을 세워 기록하도록 명하셨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현황]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능비는 장릉 사적지 경내에 자리 잡고 있으며 비각이 건립되어 있어 보존 상태가 훌륭하다. 장릉 홍살문을 지나 오른편에 비가 세워져 있어 방문객들이 능역 관람에 앞서 비를 접할 수 있어 충실한 안내 역할을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능비는 단종에 대한 추존 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진 비석으로 단종의 생애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