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1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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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效參-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조영주 |
[정의]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출가외인의 명당 탈취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백효삼의 묫자리」는 양주 윤씨 가문에서 출가한 딸이 명당인 친정아버지의 묫자리에 물을 부어 못쓰게 하고 대신 남편인 백효삼(白效參)의 묘를 만들어서 수원 백씨 가문을 번성하게 한다는 풍수담이자 명당 탈취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0년 이도남이 집필하고 전국문화원연합회에서 발간한 『한국의 향토문화자원』2-경기·강원 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 양주 윤씨 가문의 한 여자가 백효삼에게 시집을 갔다. 여자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자손을 얻고 잘 살고 있었는데, 얼마 후 남편이 죽고 말았다. 그렇게 살고 있던 어느 날 여자의 친정에서 친정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전해 와 여자는 친정을 찾았다. 친정아버지는 아들들을 불러 자기가 죽으면 어디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긴 후 숨을 거두었다. 친정아버지가 묻어 달라고 한 자리는 명당자리였다. 그 사실을 안 여자는 식구들 몰래 한밤중에 그 자리를 찾아가 물을 가득 부어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친정아버지를 장사 지내기로 한 날이 되어 아들들이 시신을 운구하여 그 자리에 가 보니 물이 가득하여 묘를 쓸 수가 없었다. 아들들이 하는 수 없이 다른 자리를 알아보려고 하는데 여자가 그 자리를 쓰지 않을 것이라면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다. 아들들은 어차피 묘는 쓸 수 없는 자리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누이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여자는 죽은 자기 남편의 시신을 옮겨 와 그 자리에 뫼를 썼다. 그 후 백효삼 집안의 자손들이 점점 번창하여 가문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다. 백효삼의 손자인 백인걸(白仁傑)[1497~1579]은 대학자로 알려졌고 예조좌랑·남평현감·사간원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선조 때 청백리에 뽑혀 국가로부터 많은 사패지(賜牌地)를 받았다.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산26번지에 백인걸 선생의 묘가 남아 있다.
[모티프 분석]
「백효삼의 묫자리」의 주요 모티프는 ‘친정 명당 훔치기’, ‘시집 흥하게 하기’ 등이다. 「백효삼의 묫자리」는 출가외인인 시집을 간 딸이 친정아버지를 장사 지낼 명당에 몰래 물을 붓고 명당이 아닌 것처럼 꾸며 묫자리를 탈취한다는 이야기이다. 출가외인은 시집간 딸은 더 이상 친정 식구가 아니고 남이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실제로 명당 탈취담 유형에는 딸이 출가외인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딸이 묘소를 훼손하는 부도덕한 행위로 가로챈 묘가 명당임을 입증하는 예로, 「백효삼의 묫자리」에서는 가문의 자손으로 경기도 양주에 묘가 있는 실존 인물 백인걸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백효삼의 묫자리」는 실존 인물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전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