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5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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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維楊-靑年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양주1동 유양동마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창래 |
설립 시기/일시 | 1922년 1월 17일 - 감리교회 내 유양엡윗청년회 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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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유양엡윗청년회 - 경기도 양주군 유양리 |
성격 | 종교 단체 |
설립자 | 노병선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군 유양리에 있었던 개신교 청년 운동 단체.
[개설]
엡윗청년회(Epworth League)는 1889년 미국에서 창설된 감리교의 청년 단체이다. ‘엡윗’은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의 고향 이름에서 따왔다. 우리나라에서는 1897년(고종 34) 5월 5일 서울 정동교회에서 창립된 엡윗청년회[초대 회장 노병선]를 기점으로 하고 있다. 유양엡윗청년회는 1922년 초에 결성된 경기도 양주군 유양리에 있던 유양리감리교회의 청년 조직이었다.
[설립 목적]
유양엡윗청년회는 종교와 관련된 강연회와 토론회, 산업 장려 등의 계몽 활동을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엡윗청년회는 3·1 운동 이후로 민족의 수난과 함께 민족 운동 거점으로서의 역할이 줄어들어 사회 구제와 문화 활동, 전도 운동에 치우치면서 교회의 일반 평신도 조직으로 자리 잡았다. 1930년 남·북 감리회가 통합할 때 엡윗청년회로 통합하여 총리원 교육국 안에 본부를 두고 지역 교회의 엡윗청년회는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1939년 일제의 압력으로 명칭을 공려회(共勵會)로 바꾸어야 했다. 해방 후에는 감리교 청년연합회[MYF]로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교회 전도, 성경 읽기, 절제 운동, 사회봉사 등에 역점을 두고 활동하였다. 또한 종교와 지역 현안에 대한 강연회 및 토론회, 야학 운영, 체육 대회 개최 등을 통해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1922년 1월 17일 『동아일보』 기사에는 유양엡윗청년회가 전년도 12월 31일 예배당 내에서 강재의 목사 사회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강연회에서는 홍병선이 등단하여 ‘인격 건설’이란 주제로 장시간 열변을 토하여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하였다. 유양엡윗청년회의 창립 전 행사로 보여진다.
1922년 5월 7일에는 일부 임원을 개선하여 자선부장에 노교순(盧敎淳), 서기에 유창호(劉昌鎬)가 선임되었다. 1922년 11월 8일에는 유양공립보통학교와 함께 추계 대운동회를 개최하였다. 추계 대운동회는 인근 다른 지역 주민들도 대거 참여하는 양주군 지역 주민의 대대적인 행사로 추진되어 3,000여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3·1 운동 이후는 일제가 문화 통치를 표방하던 시기로 양주 지역에 많은 사회단체가 발족되었다. 그중 유양엡윗청년회는 다른 조직에 비해 진보적이었으며 치외 법권이 어느 정도 보장되었던 교회 조직으로서 지역의 중심 단체였다. 따라서 교회 활동뿐만 아니라 양주 지역 내 청년 운동 및 계몽 활동을 활발히 전개해 나갈 수 있었다. 양주군의 청년 학생들은 민족의식의 자각과 함께 애국심을 함양했으며 책임 있는 지성인으로서 높은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