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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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山鄕校大成殿 |
영어공식명칭 | Daeseongjeon Shrine of Gosan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143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서지은 |
건립 시기/일시 | 1398년 - 고산향교대성전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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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601년 - 고산향교대성전 재창건[현존 건물의 초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10년 - 고산향교대성전, 명륜당, 동서재 개축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5년 8월 16일 - 고산향교대성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6호로 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8년 - 고산향교대성전 전면 해체수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고산향교대성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고산향교대성전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143 |
성격 | 향교 |
양식 | 단층 맞배건물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3칸 |
소유자 | 고산향교전교 |
관리자 | 고산향교전교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에 있는 고산향교에 있는 사당.
[개설]
고산향교는 비교적 경사가 급한 추줄산 산록에 외삼문-명륜당-내삼문-대성전이 하나의 축선 상에 배치된 전학후묘(前學後墓)의 배치 형태를 하고 있다. 고산향교는 경사면 대지를 3단으로 나누고 건물을 배치했다. 가장 아랫단은 외삼문(外三門)과 관리사가 있고 두 번째 단에는 명륜당(明倫堂)이 위치하고 그 뒤로 마당을 중심으로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다. 그리고 세 번째 단은 마당 뒤편 중앙 높은 곳에 대성전(大聖殿)으로 들어가는 내삼문(內三門)이 있고 내삼문을 지나면 제일 높은 위치에 고산향교대성전이 자리하고 있다. 고산향교대성전은 1985년 8월 16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6호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고산향교는 고산초등학교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고산향교대성전은 고산향교 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변천]
1392년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부목군현(府牧郡縣)에 향교를 짓도록 했다. 고산향교대성전은 1398년(태조 7) 대성전과 명륜당 등이 창건되었는데, 대성전은 터가 가라앉고 1399년 화재로 소실되어 1400년(정종 2)에 재건되고 1419년(세종 1)에 다시 중건되었다가 1597년(선조 30)에 대성전, 명륜당, 동·서재 등이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1601년(선조 34) 중창되었으며, 1626년(인조 4)에 대성전 중건이 이뤄지고 1630년(인조 8)에 중창으로 대성전 상량이 이뤄진다. 1653년(효종 4)에 고산문묘 대성전 상량으로 다시 한번 중수된다. 1762년(영조 38) 대성전 중수와 1810년(순조 10) 대성전의 대 개축공사가 이루어진다. 1877년(고종 14)에는 대성전 상량으로 중수가 이뤄진다. 1948년 대성전 전면보수가 실시되고 1956~1961년, 1971년, 1975년에도 대성전 보수가 이뤄지며 1981년 대성전 단청공사, 1984년에는 대성전 보수가 이뤄지고 1985년 8월 16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6호로 지정된다. 1988년 산자이상 대성전 해체보수가 진행되었고 1990년에는 대성전 해체복원, 2004년에는 대성전 전면해체 실측과 보수가 이뤄졌다.
[형태]
고산향교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전퇴[집채의 앞쪽에 달아 낸 칸살]를 구성한 건물이다.
[현황]
고산향교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전퇴를 갖추고 내부는 통칸으로 구성되었다. 기단은 자연 장대석으로 정교하게 2단으로 쌓았으며, 전면의 기단은 좌우 측면보다 2배 가까이 크게 해서 넓은 공간으로 구성했다. 초석은 방형, 원형초석과 자연석이 섞여 있는데 일부 다듬은 초석 가운데는 원형 2단 주좌를 구성한 것도 있다. 기둥은 모두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내부에 고주를 사용해서 전퇴를 구성했다. 기둥 상부는 창방으로 결구하고 그 위에 공포를 짜 올린 주심포 건물이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올린 주심포 형식이다. 공포는 포작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확인된다. 전면은 2출목 3익공 구조이고 내부는 보아지 형식으로 되어 주심포식을 이루고 있지만 첨차·소로·살미첨차들이 모두 다포식 계통의 모양을 하고 있다. 헛첨차나 살미첨차의 앙서형과 연꽃무늬, 첨차 상부의 봉두 장식 등이 조선 후기 양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둥 위 공포 사이에는 화반을 두 개씩 얹어 놓아 주심도리의 장여를 받치고 있는 것은 다른 건축의 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구조법이다. 가구는 7량집으로 되어 있고 내부는 통칸으로 처리했다. 대들보를 앞뒤 평주에 놓고 이 위에 판형의 높이가 낮은 동자주를 세워 중도리와 중보를 받치고, 이 중보 위에 다시 종보를 올렸다. 천장은 연등천정으로 가구를 노출했는데 종보부터는 우물천장을 가설해 서까래를 가리고 있다. 처마는 전면만 겹처마로 구성하고 후면은 홑처마이다.
[의의와 평가]
고산향교대성전은 다른 향교와 달리 공포 부재에서 장식적 수법이 두드러진다. 이는 창건할 당시인 조선 중기의 주심포 구조를 바탕으로 여러 중수과정을 거치면서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다포계의 포와 장식이 첨가되는 조선 중기 이후 다포형 기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