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은 전주유씨 유습(柳濕)이다.>라고 설명하고는, 고흥유씨 유습(柳濕)을 소개하고 있어서 혼란스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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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은 전주유씨 유습(柳濕)이다.>라고 설명하고는, 고흥유씨 유습(柳濕)을 소개하고 있어서 혼란스럽습니다. 전주유씨 대종중의 자료에 의하면 <전주유씨는 류습(柳濕)을 시조(始祖)로 하며 2세 연안부사 류극서(柳克恕) ? ( ? )∼우왕14(1388)이고, 3세 영흥공 류빈(柳濱) 공민19(1370)∼세종30(1448)은 직제학공[극서]의 작은 아들이다.>라고 합니다. 1349년생 심효생이 전주유씨 시조 유습의 딸과 결혼하였다면 연대기가 비슷하다고 여겨집니다. 한편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심효생은 유탁의 아들 고흥유씨 유습의 딸과 결혼하였다고 합니다. 연대기에 의하면 1367년생 유습은 심효생보다 18세가 어립니다. 즉, 유습이 10세에 결혼하여 11세에 딸을 낳았고 그 딸이 또 10세에 심효생과 결혼하여 11세에 딸을 낳았다고 하더라도, 1389년생 심효생의 딸이 1394년(태조 3)에 이방석과 결혼할 때의 나이가 5세에 불과합니다. 이는 아무리 여말선초의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이해가 난해합니다. 따라서 심효생의 장인 유습은 고흥유씨 유습이 아니라 전주유씨 시조 유습이 맞지 않는지요? 그렇다면 전주유씨 시조 유습을 소개하는 것이 맞지 않는지요? 자료를 찾지 못하여서 부득이 문의드립니다. 본 향토문화대전에서는 고흥유씨 유습을 소개하고 있으면서, 심효생의 장인이 전주유씨 유습이라고 하니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