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6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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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舜孝 |
영어음역 | Son Sunhyo |
이칭/별칭 | 경보(敬甫),물재(勿齋),칠휴거사(七休居士),문정(文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최인표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경보(敬甫), 호는 물재(勿齋)·칠휴거사(七休居士). 평해군(平海君) 손익담(孫翼淡)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군수 손밀(孫密)이고, 어머니는 정선군사(旌善郡事) 조온보(趙溫寶)의 딸이다. 부인은 평산신씨로 감찰 신자의(申子儀)의 딸이다.
[활동사항]
1451년(문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453년(단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457년(세조 3)에는 문과중시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경창부승에 발탁되고, 병조좌랑을 거쳐 1471년(성종 2) 전한집의가 되어 17개 항목의 정책을 상소하여 채택되면서 형조참의로 특진되었다. 그러나 직무의 처리가 잘못 되었다 하여 상호군(上護軍)으로 좌천되자 사퇴하여 남산 밑에 초정(草亭)을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
그 뒤 장례원판결사가 되어 소송 문제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였으며, 1475년 부제학을 거쳐 동부승지·우부승지·좌승지를 지내고, 1478년 도승지가 되었다. 이어 강원도관찰사로 나아가 선정을 베풀고, 호조참판·형조참판을 지내면서 왕비 윤씨(尹氏)의 폐위를 반대하였다. 1480년 지중추부사로 정조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공조판서·경기도관찰사·대사헌·한성부판윤·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485년 임사홍(任士洪)을 두둔하다 왕의 미움을 사서 경상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가 우찬성(右贊成)이 되었다. 1496년(연산군 2) 늙었으므로 사직을 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궤장(机杖)이 내려졌다. 1497년 향년 71세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사상]
성리학의 대가로 특히 『대학』·『중용』·『역경』에 정통하였다. 문장이 뛰어나고 대나무 그림에 능하였으며,『세조실록(世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저술 및 작품]
1726년에 간행한 문집 『물재집(勿齋集)』 2권 1책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노은동 운암서원(雲巖書院)에 배향하였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787년 훼철되었다가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 재건되었다. 매년 음력 2월 중정일(中丁日)에 제사하고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