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9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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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炳䄵 |
영어음역 | Gim Byeongnyeo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조도현 |
출생 시기/일시 | 1855년 - 김병년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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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6년 - 안면도에 광영신숙 설립 |
몰년 시기/일시 | 1927년 - 김병년 졸 |
출생지 | 홍성 - 충청남도 홍성군 |
거주|이주지 | 서산읍 장리 - 충청남도 서산시 장동 |
성격 | 교육자 |
성별 | 남 |
본관 | 안동 |
대표 관직|경력 | 승지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에서 활동한 교육자.
[가계]
본관은 안동.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김상용(金尙容)[1561~1637]의 후손이다. 김상용은 병자호란 때 청과의 화의를 반대하였던 척화파 대신 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형이다. 그는 청군이 쳐들어올 때 왕족과 종묘의 위패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하였다가 강화성이 함락되자 자결하였다.
[활동 사항]
김병년(金炳䄵)[1855~1927]은 성품이 맑고 검소하며 학식과 교양이 높았다. 1887년(고종 24)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승지(承旨)에 이르렀으나 조선 말 어지러운 정세를 개탄하여 낙향, 안면도에 은거하였다. 1906년 12월 사재를 털어 편준익(片準翊)과 함께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에 광영신숙(廣英新塾)[현 안면초등학교의 전신]을 세워 신교육을 실시하였다. 이 학교는 지역 유지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다가 1920년 공립보통학교로 개편되었다. 김병년은 만년에 서산군 서산읍 장리[현 서산시 장동]로 이사하여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15호로 지정된 상여(喪輿)가 있다. 김병년이 승지 벼슬을 할 때 가르쳤던 고종의 원자인 완화군(完和君) 이선(李墡)이 1880년 15세의 나이로 죽자 승언리 주민들을 동원하여 메게 하였던 상여이다. 김병년은 자신이 죽으면 이 상여로 장사를 지내게 해 달라고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상여는 길이 2.2m, 폭 1m, 높이 1.5m의 크기에 정교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상여는 김병학의 장례에 사용된 이후 계속 승언리에서 보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