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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369
한자 基郡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정재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57년 12월연표보기 - 기군에서 부성군으로 개정
관할 지역 기군 - 충청남도 서산시 일대

[정의]

백제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군(郡).

[개설]

백제는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방(方)·군(郡)·성(城)[현(縣)]제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서산시 일대는 기군(基郡)으로 편제되었다고 여겨진다. 기군에는 성대혜현(省大兮縣), 지육현(知六縣)의 2개 성(城)이 예속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삼국은 고대 국가로 발돋움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여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는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며,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백제도 기존의 성(城)·촌(村)제로부터 담로제(擔魯制), 다시 방·군·성제로 점차 지방 통치 제도의 개편을 꾀하였다. 그 결과 수도를 중심으로 방위에 따라 오방성(五方城)을 지방 통치의 중심 치소로 하였다. 또한 각 방성에는 다시 군성(郡城)과 현성(縣城)을 설치하여 지방 통치의 효율성을 도모하였다. 기군은 삼국 시대에 서산 일대에 설치된 군성이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6 잡지 제5 지리3 신라 웅주 부성군조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부성군(富城郡)은 본래 백제 기군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 영현(領縣)이 둘이었다. 소태현(蘇泰縣)은 본래 백제 성대혜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도 그대로 쓴다. 지육현(地育縣)은 본래 백제 지육현(知六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북곡현(北谷縣)이다.”

[내용]

기군의 치소(治所)나 통치 범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성대혜현이 지금의 태안군(泰安郡) 일대로 비정되고, 지육현이 현 지곡면, 즉 대산반도(大山半島)의 초입에 자리하고 있어 사실상 태안반도 전체가 기군의 관할 하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태안반도 일대를 아우르기 위해서는 그 중심지로 현 서산 시내 일원이 그 중심지로 적합하다. 따라서 부춘산 정상에 위치한 북주산성(北主山城)을 치소로 보는 견해도 있다.

[변천]

757년(경덕왕 16)에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부성군으로 고쳐, 소태현과 지육현의 2개 현을 관할하게 하였다. 고려 시대 잦은 승격과 강등을 거듭하면서 서산군(瑞山郡)·서주목(西州牧)·서령부(瑞寧府)를 거쳐 조선 태종서산군이 되었다. 1914년 태안·해미를 합쳐 서산군이라 하였으며, 1989년 서산읍이 시로 승격되고, 태안군은 다시 분리되었다. 1995년 서산시와 서산군의 통합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마한의 한 소국에서 출발한 서산 지역은 삼국 시대 때 백제의 기군으로 편제되었다. 서산 지역은 백제의 내포 지역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활용되었다. 특히 사비 시기에는 전략적인 중요성 때문에 서방성이 설치된 곳으로 보기도 한다. 기군태안반도 일대에 위치하기 때문에 해양과 내륙의 접합점으로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06.25 내용 수정 문장 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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