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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601
한자 灌燭寺事蹟碑
영어의미역 Historical Record Monument of Gwanchok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254[관촉로1번길 2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승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적비
건립시기/일시 1743년연표보기
관련인물 혜명|각혜
재질 화강암
높이 133㎝
너비 80×57㎝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254[관촉로1번길 25]지도보기
소유자 관촉사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적비.

[건립경위]

관촉사 사적비관촉사의 상징인 은진미륵 및 정문과 법당의 조성 경위를 밝히고 있는 사적비로서, 1743년(영조 19) 승려 각혜와 속인으로 구성된 불량계원(佛粮契員) 다수가 참여하여 세운 비이다. 관촉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인 마곡사의 말사로 963년(광종 19) 혜명(慧明)이 창건하였다.

[형태]

관촉사 사적비는 화강암으로 변이 115㎝인 대석 위에 80×57㎝ 크기의 방형 비좌를 마련하였고, 대리석으로 만든 비신은 높이 133㎝, 폭 60.5㎝, 두께 30.5㎝의 크기로 측면에 ‘관촉사사적비명’이라 새겨져 있다. 우진각 지붕 모양의 옥개석은 80×97㎝ 크기로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금석문]

관촉사 사적비에는, “968년(광종 19) 사제촌의 여자가 반야산 서북쪽 모퉁이에서 고사리를 채취하고 있는데, 홀연 동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가보니 큰 돌이 땅 속에서 솟아나오고 있었다. 괴이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와 사위에게 말하니, 사위가 곧 현감에게 고하였다. 관에서는 조사와 함께 회의를 통하여 “이는 반드시 불상을 만들 징조다.”라는 결론을 얻고 사신을 팔로에 보내어 공사를 맡을 사람과 부처상을 만들 사람을 구하여 혜명이 천거되었다.

조정에서는 공장인 100여 명을 선발하여 968년(광종 19)에 일을 시작해서 무릇 37년이나 경과한 1006년(목종 9)에 만들어졌으며, 불상의 몸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중국의 승려 지안이 이를 보고 쫓아와서 ‘광명이 동시에 서로 응한다’라고 하여 관촉사라 하였다.”는 은진미륵관촉사의 유래가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관촉사 사적비는 귀부와 비신, 옥개석을 모두 갖추었지만 그 양식은 무척 단순하다. 따라서 유물적인 가치보다는 비문을 통해 귀중한 절의 역사를 알게 해준 문헌적 의미가 더 크다. 비문을 보면 관촉사의 건립 경위와 은진미륵의 준공 기간 등을 알 수 있으며, 그 내용에서 백성의 참여와 국가의 개입을 볼 수 있어 고려 전기 불교와 국가, 민간 관계의 일면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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