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591 |
---|---|
한자 | 慶州崔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
집필자 | 강민식 |
세거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
---|---|
집성촌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초평면 영구리 |
입향시기/연도 | 조선 후기 |
성씨시조 | 소벌도리 |
입향시조 | 최천주|최건주 |
[정의]
소벌도리를 시조로 하고, 최천주·최건주 형제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연원]
최씨의 대종(大宗) 경주최씨(慶州崔氏)는 신라 6촌 중 고허촌(古墟村)[지금의 경주 중심부]의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를 시조로 하고, 그의 후손이며 신라의 석학(碩學)인 최치원(崔致遠)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최치원·최승우(崔承祐)·최언위(崔彦僞) 등 세 사람은 ‘삼최(三崔)’라 일컬어질 정도로 이름을 떨쳤다. 고려 성종 때 명신으로 이름이 높았던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 최승로(崔承老)와 정종 때 문하시중을 지낸 최제안(崔齊顔), 현종 때 명신인 최항(崔沆), 충숙왕 때 문호로 이름을 날린 최해(崔瀣) 등이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퇴조를 보여 문과 급제자 42명, 호당(湖堂) 1명, 청백리 1명, 공신 5명을 배출하였을 뿐이며, 상신(相臣)과 대제학에 오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최한홍(崔漢洪)과 최진립(崔震立)이 유명했는데, 최한홍은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가담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으로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졌고, 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정무공(貞武公) 최진립은 정유재란 때 권율(權慄) 장군 휘하에서 전공을 세우고 병자호란 때 공주영장(公州營將)으로 용인(龍仁)에서 분전하다 전사했으며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근대 인물로는 한말의 거유(巨儒)요, 의병장으로 유명한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2대 동학교주인 최시형(崔時亨)을 들 수 있다.
[입향경위]
조선 영조 때 최천주·최건주 형제가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석박마을에 내주(來住)한 이래 250여 년 세거하고 있다.
[현황]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진천군 관내에 거주하는 경주최씨는 397가구 1,223명으로 나타났다.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석박마을에 전씨(全氏)·최씨(崔氏)·서씨(徐氏) 등이 각성을 이루며 살고 있으며,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영구(永九)마을에 경주최씨·밀양박씨·고령신씨들이 각 성을 이루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