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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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遊金烏山錄 |
영어의미역 | Travel Writing of Geumosan Mountai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영주 |
[정의]
1706년(숙종 32) 김하천이 구미 지역의 금오산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
[개설]
「유금오산록」은 김하천(金廈梴)이 1706년 9월 11일부터 9월 13일까지 영남의 진산인 금오산(金烏山) 일대를 아버지 및 교우들과 유람한 후 쓴 기행문이다.
[내용]
9월 11일 대혈사(大穴寺)를 출발하여 대혜문(大惠門)·화암(華巖)·용각폭포(龍角瀑布)·도선굴(道仙屈)·흘송대(屹松臺)를 지나 만승사(萬勝寺)·건성문(建城門)·갈암사(葛巖寺)·현월봉(懸月峯)·진남사(鎭南寺)·약사봉(藥師峯)에서 다시 현월봉으로 돌아와 보봉사(普峯寺)·망운대(望雲臺)·동포루(東砲樓)·동양사(東陽寺) 등을 유람하였다.
대혈사 부근 마을에서 길재(吉再, 1353~1419)가 손수 심었다는 천여 그루의 비취빛 대나무와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이 지은 시를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 또한 대혈사 부근의 반석에 새겨진 선조 욕담공(浴潭公)이 쓴 자호를 보고 감회에 젖었다. 기이하고 험준하여 은신하기에 적당한 도선굴을 비롯하여 흘송대의 탈속적인 풍광 등을 차례로 기술하고 또 여행 일정에서 거쳐 지나왔던 경관들을 중국의 자연 경관 혹은 고사들에 짝지어 비유적으로 표현하였다.
후반부에서는 유람록 완성의 계기가 아버지의 권유였음을 밝히는 한편, 1704년 아버지의 별세로 인해 1705년에서야 아버지의 친구로 유람을 함께했던 와유당(臥遊堂) 박공(朴公)의 유산록을 받아와 돌아간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그리움과 뜻을 받들어 유산록을 간행하게 되었음을 밝혔다.
[특징]
대체적인 유람 기록이 ‘유람의 계기, 유람 일정’으로 마무리되는 구성을 보이는 것과 달리 「유금오산록」은 뒷부분에서 일정 동안 보았던 경관들을 중국의 자연 경관과 비교·평가하는 한편 유람록 작성의 계기 등을 첨가하는 독특한 구성 양식을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