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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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淑綺旌閭扁額 |
영어의미역 | Jeongryeo Plaque of Bae Sukgi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 915-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광수 |
성격 | 편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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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일시 | 1795년 |
제작지역 |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 |
재질 | 목재 |
높이 | 26㎝ |
너비 | 167㎝ |
소장처 | 삼강려 |
소장처 주소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 915-3 |
소유자 | 구미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문화재 지정일 | 1997년 9월 29일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배숙기(裵淑綺)의 정려편액.
[개설]
배숙기는 성주인(星州人)으로 1470년(성종 1) 진사를 거쳐 문과에 등제하여 홍문관저작에 이르렀다. 어릴 때부터 영리하고 성격이 온순하여 부모님의 뜻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었다. 부모를 편히 잘 모시는 능양(能養)을 극진히 하여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외출하여 늦게 돌아와 양친이 잠을 자면 밖에서 잠이 깰 때까지 기다려 문안을 드리곤 하였다.
항상 말과 행동을 조심하여 부모에게 욕이 돌아가지 않게 하는 불욕(弗辱)을 실천하였으며, 부모가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에는 울면서 간(諫)하여 잘 판단하도록 하였다. 학문과 덕행을 쌓아 인격을 높이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여 크게 이름을 떨쳐 존친(尊親)을 다한 공로로 조정에서 정려를 내려 그의 탁월한 효행을 만인의 사표(師表)가 되도록 하였다.
[형태]
정려편액에는 ‘효자홍문저작배숙기지려(孝子弘文著作裵淑綺之閭)’라 새겨져 있고, 글자의 크기는 12×14㎝이며, 건조 연대는 ‘당저을묘중건(當宁乙卯重建)’이라 각자되어 있다. 편액의 크기는 높이 26㎝이고, 너비는 167㎝이다.
[특징]
1795년(정조 19) 선산부사(善山府使) 이채가 봉계리 한 마을에서 충신 길재(吉再), 효자 배숙기, 열녀 약가(藥哥)가 났으니 비각을 지어 삼강려(三綱閭)라 이름 붙였다.
[의의와 평가]
유교의 이념인 충효열(忠孝烈)의 정신을 실천한 인물들이 한 마을에서 배출되었다는 것이 귀감이 되고 있으며, 효자 배숙기의 효행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어 그 의의가 높다.